브라질 사태가 국제금융시장에 던진 충격은 예상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삼바 효과」가 당초 우려만큼 전염성이 강하진 않은 셈이다.물론 중남미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긴 하지만 지난해 러시아 사태와는 달리 투자가들의 공황심리나 혼란상은 크게 줄어든 양상이다. 이번엔 투자가들이 외부충격을 훨씬 잘 흡수하고 있다는 애기다.
과거처럼 신흥시장에서 자금이 한꺼번에 유출되거나 선진국 채권으로 자금이 대거 몰리는 이상현상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15일 금융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지난 18개월 동안 극심한 파란을 겪는 과정에서 체득한 이른바 「학습효과」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인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또 헤지 펀드의 위상이 크게 약화됐고 선진국의 탄탄한 공조체제가 받쳐주고 있는 것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선진국의 위기관리체제= 지난해 몇차례의 금융위기를 통해 구축된 선진 7개국(G7)의 핫라인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효력을 발휘했다.
미국은 신속하게 카르도수 정부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혀 투자자들의 불안심리를 진정시켰으며 G7과 국제통화기금(IMF)은 막후 교섭을 통해 세계경제에 미칠 파장을 차단하는 기동성을 발휘했다. 모두가 익숙해 있던 위기관리체제가 가동된 셈이다.
G7, 특히 미국이 현사태를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은 투자자들을 계속해서 금융시장에 머무르게 만들고 있다.
브라질 사태는 그러나 환율체제를 비롯한 국제금융체제 재편 속도를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슈뢰더 독일총리는 내달 20일 독일 본에서 열릴 G7 재무장관회담에서 금융개혁을 위한 『일관된 이론』이 제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투기자본 약화= 지난해 러시아 사태와 달리 지금은 국제금융계에서 헤지 펀드의 영향력이 약화됐다는 점도 금융시장 안정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봤던 것은 헤지 펀드를 비롯한 투기성 국제자본이었다. 이들은 막대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중남미나 아시아의 투자자금을 앞다투어 빼내 세계 경제를 순식간에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반면 현재 브라질에는 미국 등 외국계 은행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 금융기관들은 일찍부터 투자 포트폴리오를 분산시켜 왔기 때문에 헤지 펀드와 달리 과도한 매도 압력에 시달리지 않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14일 『대형 은행들이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비중을 줄여와 브라질 위기로 인한 개도국의 신용경색 현상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기관들의 투자 패턴도 훨씬 건전해졌다. 과거처럼 레버리지나 투기성 도박에 승부를 걸지 않는다. 모두가 LTCM(롱 텀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파산 위기가 가져다준 값비싼 교훈인 셈이다.
체이스 증권의 수석 분석가인 로렌스 브레너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면서 『시장은 레버리지 비율을 낮추고 투자위험을 줄일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의 자신감= 미국이 여전히 「세계경제의 오아시스」로 남게될 것이라는 믿음은 좀체로 흔들리지 않고 있다.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가 이틀간 하락세를 보이긴 했지만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인 편이다. 어차피 단기급등에 따른 조정국면이 필요한 시점이었다는 애기다.
14일에도 미국의 인플레 증가율이 지난해 1.6%에 그쳐 34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왕성한 소비자 구매활동이 3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경제 청신호가 잇따라 발표됐다. 미국 경제의 탄력성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과제와 전망= 그래도 문제는 남아있다. 무엇보다 브라질이 자체적으로 위기상황을 수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카르도수 정부는 정치적 갈등을 수습하고 대외적인 신뢰도를 회복해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정부가 지도력을 발휘해야만 국제사회의 지원이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남미의 멕시코나 홍콩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는 것도 한가닥 불안감을 던져주고 있다. 양국은 브라질발(發) 금융위기의 유력한 전염 통로로 관측되고 있다.【정상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