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용감한 사람들이 넘친다.언젠가 서울시내에서만 하루동안 9백여명이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경찰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미리 예고한 후 실시한 결과라고 하니 간 큰 운전자들의 용기에 실로 어이가 없어진다.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예고를 비웃으며 술에 취한 채 자동차를 용감하게 운전하는 사람들, 주말이면 버스전용차선을 독일의 아우토반처럼 질주하는 운전자들, 보통 샐러리맨의 일년 연봉에 가까운 판돈을 걸고 도박하는 주부도박단들.
이처럼 이 나라 곳곳에는 자신들의 큰 간을 자랑하며 활개치는 용감무쌍한 한국인들이 넘쳐나는 듯 하다.
용기! 우리말 사전을 보면 용기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이라고 짧게 설명되어 있어 용기의 정의를 한마디로 가늠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러나 용기란 단어의 서두에 「진정한」이란 수식어 하나만 붙인다면 우리는 용기의 딜레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용기! 필자는 이 참된 용기의 모습을 며칠전 90세 한 노옹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90세의 노구를 이끌고 평생을 모은 전 재산 36억원을 고려대에 기증한 오현우옹.
6.25때 평양에서 월남하여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 일생을 바쳐 모은 전재산. 이 모든 것을 후학을 위해 아낌 없이 내놓은 한 노옹의 용기는 잘못된 용기와 뻔뻔한 만용이 넘쳐 흐르는 척박한 이 시대에 진실한 용기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삼략에 「용자호행기지(용감한 사람은 그 뜻을 펴길 좋아한다)」라 했듯이 오현우씨야말로 자신의 고귀한 뜻을 펼친 이 시대의 진정한 용자인 것이다.
「인간의 위대한 척도는 용기에 있다」고 낙성 베토벤은 말했다. 인간의 위대성을 판가름하는 용기. 필자를 포함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 점점 찾기 힘들어지는 덕목이 돼 버린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진정 필요로 하는 용기란 덕목은 나라와 인류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것 만은 아닐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의 작지만 소중한 용기의 결합체. 바로 이 작은 용기의 모임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술을 마신 뒤에는 차를 두고 가는 용기, 아무리 바쁘고 길이 막혀도 교통신호 만큼은 꼭 지키겠다는 용기. 그리고 조금은 어렵지만 나보다 힘들고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작은 사랑을 나누는 용기. 이러한 용기야말로 그 어떤 위대한 용기보다도 값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용자들이 살아가는 용기 있는 나라, 고난에 도전하고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또 어떠한 유혹도 물리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사회를 이제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