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新도미노이론의 허실

미국이 사담 후세인의 대량 살상 무기 개발 저지를 표면적 이유로 내세워 이라크공격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다. 이름하여 '신(新) 도미노 이론'이다.냉전시대에 등장했던 첫번째 도미노 이론은 베트남이 공산화될 경우 필리핀 등 주변 국가들까지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공산권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게 요지였다. 최근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신 도미노 이론'은 만약 미국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라크에 친 서구 민주 정권을 세운다면 이에 따른 파장이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등 전 아랍권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것. 이 이론은 전쟁을 옹호하는 보수주의자, 특히 신보수주의 지식인들 사이에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내용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사설에서 이들의 주장을 이렇게 요약했다. "만약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성공적으로 제거하고 이라크 내 민주주의를 정착하게 될 경우 이러한 교훈이 아랍권 전체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최근 미 행정부에서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사항이다. 부시 대통령의 유엔(UN)연설에 대해 언론은 이라크가 무장 해제돼야 한다는 그의 주장과 UN이 제시한 요구 조건들에만 관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부시는 아프가니스탄이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경우처럼 이라크에도 민주정권이 세워져야 한다고 역설, 신보수주의자들의 도미노이론을 지지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이라크의 무기 사찰 허용과 이에 따른 이라크의 무장해제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 도미노 이론을 염두에 두고 있는 부시 대통령에게 이는 충분치 않다. 후세인이 제거되고 이라크 내에 새로운 (민주적)정치 풍토가 자리 잡히지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아랍정권 전체에 확산되는 도미노 현상은 일어날수 없기 때문이다. 도미노 이론 신봉자들은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고 친 서구적인 민주 정권을 수립할 경우 세가지 이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매우 실리적인 관점이다. 첫째,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 교체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 붕괴보다 적대적 국가들에게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라크의 신정권은 산유량을 확대, 미국의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한 석유 의존도를 줄이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바로 신 도미노 이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다원주의의 확산이다. 첫째와 두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그다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세번째 이점에 대해서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이 이라크 내에 민주 정권을 세우는 것 자체가 가능한지, 또한 민주 정권이 세워진다 해도 그것이 미국이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이어질 지가 의문이다. 이라크의 정치 역사는 1932년 독립국가로 출범한 이후 군부와 왕정, 암살, 소수 민족간의 충돌로 점철돼 왔다. 이라크는 지난 30년간 후세인의 바스당 외에 정치 대안 세력이 전무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중산 계층은 이라크 독재 정권의 악정과 서구의 경제 금수조치의 영향으로 거의 소멸된 상태다. 만약 강압적인 힘을 발휘해온 후세인이 사라질 경우 쿠르드족과 수니파, 시아파간의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이란과 터키 등 제 3국이 개입 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이라크내 민주적 정권이 수립된다고 해도 그 같은 사실이 다른 아랍국가들을 민주 정권으로 끌어들일 유인책이 될 지에 대해서도 불확실하다. 전쟁으로 촉발될 한 나라의 개혁이 이웃국가의 사회적 변화를 '평화적으로' 이끌어낼 것이라는 주장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 아닐까. /로널드 브라운스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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