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필] JP 小考

그는 리얼리스트인가, 로맨티시스트인가. JP라는 인물을 놓고 문학적 탐색을 한다면 이런 양극단의 의문이 떠오를 법하다. 5.16 군사 쿠데타의 주역으로 정치무대에 등장했던 그는 40년 가까이 「생존」해 있다.그것도 그냥 생존이 아니다. 공동정권의 보스이자 현직 국무총리다. 파란만장한 정치사에서 부침의 과정은 있었지만 2인자의 위치를 끈질기게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분명 리얼리스트이다. 현실정치에서는 그런 면모가 두드러지지만 풍류적 기질은 남다르다. 가끔 기자들과 선문답을 하고 한시 한 구절을 던져 시류를 관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한때는 「목요회」의 멤버로 캔버스와 이젤을 들고 돌아다니며 그림에 열중하기도 했다. 그는 책을 열심히 읽는 탐독가로도 알려져 있다. 로맨티시스트적 풍모가 풍겨나는 대목들이다. 신군부가 권력을 잡았을 때 그와 아주 가까운 관계인 한 인사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이 인사는 그에 대한 평을 이렇게 비유해 말했다. 『대궐에 난리가 났어. 왕의 자리가 흔들리니 이놈 저놈 대궐을 에워싸게 됐지. 갸(JP)도 대궐문까지 가지. 문을 밀어 봐. 찌꺽거리기는 하는데 안열려. 대권 잡을 랴면 문을 부수거나 담을 넘어가야 할 것 아녀. 이 사람은 그냥 돌아서는 사람이야. 권력은 로맨티시스트가 잡는 게 아니여.』 「내각제 유보」로 그는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공동정권의 탄생명분과 대국민 약속을 어긴 것을 두고 난타를 당하고 있다. 세평은 신당의 총재자리와 내각제 유보를 맞바꾸었다고 그의 노욕을 질타한다. 내각제는 어쩌면 그에게 있어 이상일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은 현실이다. 일찍이 중앙정보부장으로 권력을 만들어 내는 시나리오를 만들기도 했고 집권당(공화당) 총재도 해보았으며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며 정치9단의 반열에 올라있는 한 사람이다. 대통령이든 수상이든 권력 1순위 후보로「준비돼 왔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을 법하다. 이것이 그의 흉중에 묻혀있는 시나리오의 전부일까. 그게 아니고 새로운 틀을 짜고 자신은 퇴장하는 멋있는 로맨티시스트적 에필로그를 그릴 공백을 남겨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3김 중 한 사람만이라도 다른 궤적을 남겼으면 싶다. 소설같은 소리 작작하라고 할 터이지만 상상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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