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골프대회를 모두 휩쓸었던 골프 신동 강승완(김승우)는 지금은 별볼일 없는 증권회사 직원으로 살아간다. 직장내에서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 그는 고객으로 유치하려고 했던 돈 많은 `누님`을 그만 동료직원에게 빽시고 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조폭 마강성(이문식)의 자금까지 날려버린다. 그런데 어느날 막가자는 심정으로 터널을 질주하던 그에게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 눈을 떠 보니, 모두들 그를 `프로골프 선수 강승완`이라고 부르는게 아닌가. 거기다 한지영(하지원)이라는 번듯한 여자가 아내라고 우기니, 이 어찌 된 일인고. 이것이 누구나 한번쯤 기다리는 인생역전이던가.
13일 개봉될 `역전에 산다`(제작 웰메이드필름ㆍ에이원시네마)는 제목 그대로 `인생 역전`을 소재로 한 영화다. 황당한 설정의 코미디이지만 `로또열풍`이 불고 있는 요즘 세태를 되짚어보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주인공을 힘들고 고민 많은 시절로 원상복귀시키는 결론이 작위적인 느낌을 받는다. 이 영화속의 역전은 세속적인 대박 역전이 아니라, 한바탕 해프닝을 통해 삶을 대하는 태도의 역전이 일어난다는 내용이 주는 진부함에서 오는 듯하다.
여기에 전반부는 소시민의 페이소스가 강조되고, 후반부에서는 강승완과 한지영이 벌이는 로맨스가 부각된다. 이 단절된 구조가 영화의 흐름을 끊는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하는 강승완의 기분에는 아랑곳없이 이혼 초읽기에 돌입했던 한지영이 다시 자신의 사랑을 찾아가는 모습이 생뚱맞아 보인다.
그러나 코미디 장르가 갖는 재미도 있다. 각본을 쓰고 메가폰까지 잡은 신예 박용운 감독은 자칫 상투적으로 비칠 수 있는 얼개에다 주인공과 뒤바뀐 대상의 인생을 뫼비우스 띠처럼 엮어놓는 변주를 시도했다.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인지 같은 사람인지 끝까지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묘미.
여기에 조연마저 겹치기로 출연시켜 재미를 더한다. 조폭 마강성 역의 이문식은 의사로 등장하고 증권사 상사 박광정과 친구 애인인 고호경은 각각 택시 운전기사와여배우로 둔갑한다. 승완의 아내 하지원도 왕년의 골프 신동을 인터뷰하기 위해 스토커처럼 매달리던 여기자였다.
`라이터를 켜라`에서 어리보기 예비군 역할을 능청스럽게 해낸 김승우는 여기서도 특유의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으로 폭소탄을 던진다. 차승원의 이미지 변신이 이제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듯이 김승우도 이제 `코믹 스타`라는 별칭이 그리 어색하지않다.
<박연우기자 ywpar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