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의 진앙'인 그리스가 3차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유럽의 돈줄을 쥔 독일 재무장관의 입에서 나왔다. 만약 그리스 문제가 다시 불거진다면 경제가 여전히 취약한 남유럽 국가들 전반에 대한 불안으로 증폭되고 이는 미약한 회복세를 보이는 유럽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또 유럽의 악화된 경영환경과 통신기술 발달로 대기업의 해외이전이 활발하게 진행돼 유럽의 고용상황이 오는 2017년까지 어두울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와 유럽 경제 회복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볼프강 쇼이블레(사진) 독일 재무장관은 20일(현지시간) 함부르크 인근의 아렌부르크시에서 열린 총선 유세집회에서 "그리스를 위한 또 다른 프로그램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외신들은 쇼이블레 장관이 말한 프로그램이란 3차 구제금융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그리스에 추가 구제금융이 필요하다는 시장의 관측은 공공연히 나왔으나 독일이 이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장은 즉각 반응해 이날 그리스 10년물 국채금리는 10%까지 치솟아 3주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아테네 증시는 전날보다 3.33%나 급락한 896.11로 장을 마쳤다.
그리스는 지난 2010년과 2012년에 국제통화기금(IMF)ㆍ유럽연합(EU)ㆍ유럽중앙은행(ECB) 등 이른바 트로이카로부터 각각 730억유로와 1,73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트로이카의 판단에 따라 1,000억유로에 달하는 부채도 탕감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리스에 추가 구제금융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리스 문제가 완전히 봉합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단순히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 가능성뿐 아니라 위기 컨트롤타워격인 IMF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그리스를 둘러싸고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IMF는 그리스가 구제금융 집행분을 예정대로 받더라도 향후 2년 동안 111억유로가 부족할 것이라며 유로존이 추가 지원을 하지 않을 경우 IMF 역시 그리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반면 유로존 각국 지도자들은 국민정서상 그리스에 대한 추가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WSJ는 다음달 22일로 예정된 독일 총선 이후 이 문제가 유럽 내에서 급부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 가능성에다 위기 소방수들의 갈등까지 겹치면 불안감은 그리스를 넘어 여전히 경제구조가 취약한 포르투갈ㆍ스페인 등 남유럽 전역으로 번질 수 있다. 이외에 이번 쇼이블레 장관의 발언으로 독일 총선판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유럽 경제에는 악재다. 그동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에 추가 구제금융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그리스에 대한 추가 구제금융은 없을 것"이라며 일축해왔다. 당장 야당은 "메르켈이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속임수를 썼다"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와 자유민주당(FDP) 연정이 46%의 지지율을 기록해 과반에 미달한 가운데 야당인 사회민주당(SPD)이 약진할 경우 유로존 경제정책에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유럽 고용시장이 2017년까지 악화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와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인 해킷그룹은 20일 보고서에서 "금융이나 정보기술(IT) 분야의 유럽 내 대기업들이 역내 경영환경 악화와 통신기술 발달로 비영업부서(back offices)를 해외로 활발히 이전해 현재 매년 13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2002년 420만개였던 유럽 대기업 내 비영업부서 일자리가 2017년까지 230만개로 줄어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최근 소폭 개선된 유로존 일자리가 2017년까지 뚜렷하게 회복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