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마감을 끝낸 나른한 오후.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오랜만에 듣는 한 벤처기업 사장의 목소리. 그는 반가운 인사가 끝내기 무섭게 그간의 속앓이를 1시간 동안이나 털어놓았다.
“도대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 `벤처`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습니까?” “밤 세워 일하고 하루종일 자금 구하러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벤처기업은 그냥 모두 고사(枯死)하라는 말입니까”그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전화를 마칠 무렵 그의 목이 메어왔다.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히고, 고시원을 전전하며 기술개발을 도와주고 있는 유명대학 출신의 후배들을 생각하면…”그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기자는 조만간 소주 한잔을 기약하며 전화를 끊었다.
경제불황이 지속되면서 벤처 업계가 신음하고 있다. 자금, 인력, 판매 어느 하나 원활한 것이 없다. 끝내 견디지 못하고 부도를 맞는 주변의 기업들을 보면서 벤처기업인들은 “혹시 우리 회사도…”라는 불안함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일은 벤처기업인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한때는 국가경제성장의 원동력이란 찬사를 받았던 벤처기업이 이제는 `사기꾼`취급을 당하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참여정부는 출범 이후 벤처산업 육성을 위한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않았고, 금융권은 벤처기업에 등을 돌리고 있다. 벤처기업 홍보담당자들은 언론의 관심도 싸늘히 식었다며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하루도 `쉬운`날이 없기는 모든 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체력이 약한 벤처기업으로서는 최근의 경기침체를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다. 벤처기업은 오늘보다는 내일, 올해 보다는 내년에 대한 희망을 먹고 산다. 오늘은 밤을 세우고, 은행 문턱에서 쫒겨나더라도 내일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이 그들의 양식이다.
그 동안 벤처 업계가 비난 받았던 윤리의식 문제에 대해서는 업계 스스로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한다. 또 부끄러운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영체제를 시스템화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과거의 잘못 때문에 희망을 잃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새로운 경제동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이제 그들의 변신을 응원하고, 희망을 되돌려 줄 때다.
<김민형 기자(성장기업부) kmh204@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