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한국축구를 보는 것 같다" "깨진항아리에 물을 붓고 있다" "독백하는 정부는 오만스럽다" "잡초근성이 사라졌다" "제발 국민을 모독하지 말라"...
집권여당을 향해 봇물 터지듯 쏟아진 `쓴소리'들이다. 열린우리당이 9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개최한 국민과의 대화는 싸늘하게 등을 돌려버린 민심의 현주소를가감없이 드러냈다.
무기력과 혼돈으로 대변되는 여권의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과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면서 올해 두차례에 걸친 재.보선에서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즉석에서 확인된 것이다.
`회초리를 맞는 심정'으로 고언을 달게 듣는다는게 당의 입장이었지만 여권내부의 `위기증후군'과 민심이반의 수위가 예상보다도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는 외부의뼈아픈 진단이 잇따르자 당직자들의 표정에는 당혹감과 긴장감이 교차하기도 했다.
당의 `구원투수' 역할을 맡고 있는 정세균(丁世均) 의장과 비상집행위원 전원이직접 대화에 나선 이날 국민과의 대화는 학계와 언론계, 재계, 시민단체 인사 7명으로 구성된 패널의 주제발표와 자유토론이 이어지며 100분간에 걸쳐 진행됐다.
패널리스트로 참석한 토론자들은 출신영역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비판을 가했다.
가장 먼저 `정체성' 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말이 중도개혁 정당이지 기존 정당과 정책적 차별화가 이뤄지지 못했다는게 비판의 요지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도대체 정체성이 뭔지 불명확하다"며 "한나라당은 청계천이라는 상품과 박정희식 경제개발이라는 역사적 자산이 있지만 우리당은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박태견 `프레시안' 논설주간은 "부자가 돈을 써야 경제가 살아난다며 사치품 특소세를 면제해준 것은 웃기는 소리"라고 참여정부의 `경제적 정체성'을 질타했다.
서울대 박효종 교수는 "여권의 국정의제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어서 도무지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며 "채워질 수 없는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고 있는 셈"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 같은 비판은 당보다는 청와대 쪽에 오히려 무게가 실린 듯했다. 박 논설주간은 "표피민심과 저류민심이 다르다던가, 대통령이 배지를 달아줬더니 지금와서 어쩐다 하는 발언들은 국민을 모독하는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김종구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은 당.청관계에 대해 "YS(김영삼)정권 못잖은 상하수직적 관계"라고 비판했다.
초심을 잃은 `오만'이 위기의 원인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박효종 교수는 "권위를 내던진 정권은 평가할만 하지만 독백하는 정부는 오만스럽다"며 "국무총리가 야당 의원을 면박하면 전투에서 이길 수도 있지만 국민의 눈을 생각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종구 논설위원은 "광화문 촛불 의미를 되새겨야 하는데 당이 너무 자만감에빠졌다"며 "잡초와 같은 근성이 사라지고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 풍찬노숙하면서 쌓아온 동지애와 전우애가 희박해졌다"고 지적했다.
`개혁의 후퇴'를 강도높게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진우 목사(전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총무)는 "우리당을 보면 문전처리가 미숙해 마치 한국 축구를보는 것 같다"며" "말만 무성하게 하지말고 국보법, 사학법, 양심적 병역거부 등 남은 개혁과제를 지금이라도 서둘러 결과물을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정책혼선과 반(反)기업 정서로 `기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경제계의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정.청간 조율이 안된상태에서 정책이 발표되니까 혼란스러워서 사업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재를 고루 등용해야 한다는 `흑묘백묘'론도나왔다. 박효종 교수는 "실사구시적 차원에서 개혁의 능력이 있다면 검은 고양이든흰 고양이든 인재를 고루 뽑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국민과의 대화는 정세균 의장체제가 출범한 지 불과 일주일만에 급하게 잡힌 토론회인 터라 패널 구성이 다양화되지 못한 점이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됐다.
우리당은 당초 참여정부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조선.동아일보 등 특정언론사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을 패널로 초청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성사되지못했다는 후문이다.
우리당은 이날 국민과의 대화에서 수렴된 각계의 의견을 토대로 11일 창당기념일에 맞춰 정국운영 로드맵을 발표하고 새출발을 다짐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여권으로부터 갈수록 멀어져가는 민심을 달랠 수 있는 비전과 일정표가 제시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