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18)을 총으로 사살한 백인 경찰 대런 윌슨(28)에 대한 대배심의 불기소 결정으로 촉발된 미국 미주리 주 퍼거슨 시의 소요 사태가 25일(현지시간) 이틀째를 맞아 미 전역으로 확산할 조짐이다.
퍼거슨 시에 진을 친 시위대 중 약 300명은 이날도 오전과 오후 거리행진을 벌이며 농성을 벌였고, 일부는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법원에 진입해 ‘윌슨 경관을 기소하지 않았으니 우리는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중의 눈을 피해 잠행을 거듭하던 윌슨 경관은 이날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출연해 브라운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백인이었더라도 똑같이 대응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정당방위가 인종차별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제이 닉슨 미주리 주지사는 전날 밤과 같은 극심한 소요 사태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퍼거슨 시에 주 방위군 수백 명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퍼거슨 시에 주둔하는 주 방위군은 2,200명 이상으로 늘어나게 됐다.
전날 오후 늦게 대배심의 결정이 공개된 뒤 약탈과 방화로 아수라장이 된 퍼거슨 시의 참상은 25일이 돼서야 속속 드러났다.
CNN 방송과 AP 통신 등 미국 언론은 전날 불기소 결정에 흥분한 시위대의 방화로 퍼거슨 시내 건물 최소 12채가 전소했다고 보도했다.
가게 문을 뜯고 들어가 물건을 훔친 일부 군중 탓에 전 재산을 날렸다는 주류 판매점과 미용 용품 관련 상점 주인이 속출했다.
치안을 책임지는 미주리 주 고속도로 순찰대는 밤사이 절도와 무단침입 혐의로 퍼거슨 시와 세인트루이스 시에서 82명을 체포했다고 25일 오전 밝혔다.
경찰과 대치 과정에서 다친 18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이 중 1명은 총상을 입었다고 미국 언론은 전했다.
약 300명의 시위대는 윌슨 경관의 기소를 주장하는 피켓과 펼침막을 들고 퍼거슨 시내 일대를 행진하며 대배심의 부당한 결정에 항의했다.
경찰 당국과 주 정부는 밤이 다가오면서 전날과 같은 최악의 소요 사태를 피하고자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폭력을 행사한 일부 시위대의 저항으로 경제적 피해를 본 상점 주인들이 자제를 호소하는 가운데 닉슨 주지사는 “범죄 행위가 퍼거슨 시에 테러를 저질렀다”며 질서 유지를 위해 주 방위군 추가 투입을 명령했다.
주 방위군은 전날 퍼거슨 시 주요 건물을 방어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세인트루이스 대배심의 발표 후 흑인 밀집 거주 지역인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도심에서는 24일 오후 늦게 약 1,000명이 도로 곳곳을 점거하고 행진을 벌이며 시위를 벌였다.
퍼거슨 시위대와 마찬가지로 일부는 스타벅스 커피점과 편의점에 난입해 물건을 약탈하기도 했다.
오클랜드 경찰은 이날 밤부터 다음날 새벽에 걸쳐 40명을 체포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도 24일 오후부터 25일 새벽까지 수백 명이 참가하는 시위가 벌어졌으며, 3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워싱턴DC에서는 전날 시위대가 백악관 앞에서 집회를 연 데 이어 이날도 아침부터 경찰청 앞, 시의회 앞 프리덤광장, 마운트 버논 광장 등지에서 규탄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도 기소되지 않는 것은 미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면서 “이번 사건은 단순히 퍼거슨만의 이슈도 아니고 워싱턴DC만의 이슈도 아닌 미국 전체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워싱턴 주 시애틀 시 경찰은 시위 해산용 후추 분무기를 분사한 끝에 5명을 체포했다.
조지아 주 애틀랜타와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도 대배심의 결정에 항의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인권활동가들은 미국 법무부에 윌슨 경관을 민권법위반 혐의로 기소할 것을 촉구하며 이날 밤 미 전역에서 동시 다발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텍사스 주 휴스턴, 뉴욕 시, 로스앤젤레스, 뉴저지 주 뉴어크 등 미국 전 도시에서 이날 부당한 결정에 항거하는 시위가 벌어질 예정이어서 경찰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불기소 처분으로 한숨을 돌린 윌슨 경관은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브라운을 사망에 이르게 해 매우 죄송하다”면서도 “상대가 흑인이건 백인이건 간에 경찰로서 똑같이 배운 대로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몸싸움을 벌이던 브라운을 제지하고자 정당방위 차원에서 발포했다는 주장을 강조한 것이다.
윌슨의 변호인은 성명을 내고 윌슨과 그의 가족이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지지자들에게 고마움을 건네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브라운의 유족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애초부터 대배심의 조사는 공정하지 못했다”며 부당한 결과를 이끈 대배심과 조사에 참여한 로버트 매컬러크 검사를 싸잡아 비난했다.
유족 측 변호인인 벤저민 크럼프는 “법과대학 1학년생도 그것보다 더 잘 조사했을 것이다, 대배심 조사 자체를 기소해야 한다”면서 “백인이면서 경찰과 인연이 깊은 매컬러크 검사 대신 특별검사를 임명했어야 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흑인 인권운동가인 알 샤프턴 목사는 “1라운드에서 졌을 뿐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며 이 문제를 미국 사회 전체의 이슈로 끌고 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디지털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