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의 문화 통해서 삶을 보다

현대미술가 김수자 개인전
최신작 '실의 궤적' 2편 등 포함
2001년 이후 작품 10여점 선봬

김수자의 '실의 궤적-1장(Thread Routes-Chpater1) /사진제공=국제갤러리,김수자스튜디오


"'최대한 만들거나 가공하지 않은 채 어떻게 새로운 시각을 드러낼까' 하는 생각으로 문맥을 전개합니다. 모방하거나 만들지 않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고 또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매개자'인 제 역할이죠."

'보따리작가'로 유명한 현대미술가 김수자(55ㆍ사진)에게 감동적인 작품 제작의 비결과 의도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누구나 일상에서 "이거 예술이네"라는 탄성을 터뜨려본 적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의 말처럼 '가공하지 않은 채 제작하는 예술'도 충분히 가능하다.

꽁꽁 싸맨 색색의 보따리와 이불보가 가득 실린 이삿짐 트럭의 뒷모습은 과거 우리네의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김수자는 여기서 '예술의 실마리'를 발견했고 이 트럭 짐칸에 걸터앉아 전국을 떠도는 퍼포먼스 영상작품으로 세계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1999년과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에서 호평 받았고 2000년 삼성미술관 로댕갤러리 전시 이후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더 바빴던 그가 오랜만에 국내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투 브리드(To Breathe)'라는 제목으로 개막한 이번 전시에는 미공개 최신작 '실의 궤적'2편을 포함해 2001년 이후 제작한 최근 영상작품 10여 점을 선보였다.

인도 뭄바이의 가난한 뒷골목에 걸린 오색(五色)의 빨래들, 최하층 계급으로 태어나 수십 년간 남의 빨래만 해주며 살아가는 '도비'의 삶, 출퇴근 기차 문에 짐짝처럼 매달려가는 사람들의 날리는 옷자락 등에서 작가는 또 한번 예술을 발견했다. 전시된 2007년작 '뭄바이:빨래터'다. 이를 두고 작가는 "보따리의 연장선 상에서 옷과 직물의 인류사ㆍ문화사를 좇아가다가 발견한 이 광경은 인간 그 자체가 보따리처럼 잔뜩 실려있는 모습이었다"며 "빈곤이 주는 미학적 풍요로움의 역설을 질문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숨쉬기:보이지 않는 거울/보이지 않는 바늘'은 작가의 숨소리와 읊조림의 소리가 영상과 함께 소개된다. 거대한 스크린을 가득 채운 색채는 서서히 바뀌어 가고, 알 수 없는 느린 숨소리는 색의 변화와 함께 빨라지고 때론 거칠어지기도 한다. 지극히 명상적인 작품을 통해 작가는 들숨 날숨에서 비롯된 삶과 죽음, 음과 양, 욕망과 버림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최초로 선보인'실의 궤적(Thread Routes)'은 총 6부작 중 2편이다. 이불보를 뚫고 다니는 바늘처럼 군중 속에 꼿꼿이 서 작가 자신이 바늘을 형상화했던 '바늘여인'작업 이후 이번에는 '실'의 궤적을 찾기 시작했다. 페루 마추피추, 타킬레 섬마을에서 실로 옷을 짓는 원주민 여인들, 벨기에와 크로아티아의 레이스짜기의 전통 등을 보여준다. 이는 서로 다른 관습과 정서를 반영하는 실이 바느질, 직조, 레이스짜기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각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지역에 따라 제각각인 실의 문화는 고고학적ㆍ건축적ㆍ문화적 구조와 유사성이 있습니다. 우리 몸의 연장선인 실의 여정에서 욕망ㆍ운용ㆍ구조에 관한 인류학적 연관성을 찾아가는 것이죠."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철학자'에 가까운 김수자는 이처럼 초라하거나 누추하고 사소한 일상의 광경에서 "삶과 예술을 통한 세계의 총체성(totality)"을 찾아간다. 세계 미술계가 왜 그를 높이 평가하는지 공감해 볼 수 있는 전시로, 영상작품을 충분히 감상하려면 2시간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 10월10일까지.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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