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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하나 틀릴 때마다 등급이 하나씩 떨어지는데 '멘붕'이에요. 이번에는 수학·영어 둘 다 만점이 아니면 2등급이래요."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수학 B형 1등급 컷이 만점일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수학까지 '물 수능' 대열에 합류하면서 수학·영어에 강한 상위권 학생들이 멘붕에 빠졌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풍문여고 3학년 9반 교실. 전날 수능을 친 학생들이 가채점한 결과를 담임 선생님에게 써내면서 꺼낸 말들은 '멘붕' '막막' '망했다' 등이었다. 일부 학생은 차마 가채점을 하지 못해 울먹거리며 빈 종이를 그대로 내기도 했다. 가채점 결과를 내지 못한 학생들 중에는 상위권 학생들도 있었다.
이모(18)양도 고민에 빠졌다. 이과 최상위권에 속하는 이 양은 현재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에 수시 지원을 한 상태다. 9월에도 2개 이상 1등급이 나와 무사히 수시 최저 등급 컷을 맞출 것으로 생각했지만 변수는 수학에서 터졌다. 이양은 상대적으로 난도가 어려웠던 국어A형에서는 100점을 맞았지만 수학B형에서는 실수로 4점짜리 세 문제를 틀렸다. 이양은 "수능을 준비하는 동안 제일 꼼꼼히 준비한 게 수학이었다"며 "실수를 하면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쭉쭉 떨어지는데 허탈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상위권이 쉬워서 울었다면 중위권 학생들은 쉬워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수학A형을 선택한 조윤진(18)양은 9월 모의평가에서는 86점을 맞았지만 이번 수능에서는 12점이나 오른 98점을 맞았다.
영동고에서는 가채점 결과를 취합해보니 평소에 수학이 4등급대였던 학생들이 100점을 맞아 1등급으로 오르는 일도 있었다. 윤상형 영동고 진학담당 교사는 "이번 수능에서 상위권 학생들이 실수하고 중위권 학생들이 쉬운 수능에 따라 약진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며 "100점을 맞아야만 1등급인 상황에서 상위권과 중위권이 뒤바뀌기도 해 학생들도 교사들도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윤 교사는 "수학에 강한 상위권 학생이 많은 강남권과 자사고·특목고일수록 혼란이 크다"며 "당장 가채점 결과가 나오면 입시 지도를 시작해야 하는데 막막하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슈퍼문' 등 과학 개념이 지문에 나와 난도가 높았던 국어는 학생들이 체감하는 난도가 더 높아져 전반적으로 점수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모(18)양은 "지구과학을 공부했지만 지문을 여러 번 읽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어려워 결국 그래프를 그려야 했다"며 "세 번 읽고도 아예 이해가 안 돼 찍기도 해서 시험 시간이 부족했다는 친구도 있었다"고 전했다. 손태진(40) 풍문여고 진학부장 교사는 "국어가 문과뿐만 아니라 이과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며 "국어 반영비율이 높은 중위권 대학은 국어만 잘해도 합격할 수 있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날 메가스터디에서 수험생 64만여명 중 17만건의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커트라인을 추정한 결과 국어는 1등급 컷이 A형 97점·B형 91점,수학은 1등급 컷이 A형 96점·B형 100점으로 확인됐다. 영어는 98점이 1등급으로 추정됐다.
일부 상위권 학생들이 수능 점수로 대학가기가 어려워지면서 수시에 올인하게 되자 고3 담임 선생님들도 진학지도에 비상이 걸렸다. 손태진(40) 풍문여고 진학부장 교사는 "수학 B형의 난도가 떨어지면서 최상위권의 변별력이 사실상 없어져 최상위권을 진학하는 학생들의 경쟁이 정말 치열해질 것"이라며 "수학의 표준점수가 국어와 비슷하거나 낮아지는 현상이 예측되면서 국어와 탐구 점수뿐만 아니라 여러 요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이과 최상위권의 경우 영어·수학 만점이 각각 4%에 이를 것으로 보여 이 두 과목의 만점을 전제로 국어를 몇 개 틀리느냐로 판가름이 날 것"이라며 "정시 진학이 어려워짐에 따라 논술과 면접 등 수시 전형에 전략적으로 올인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