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휴대폰 바이러스에 대비하자

조류독감 공포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에이즈 공포에 이어 사스(SARSㆍ중증급성 호흡기증후군), 구제역에 이르기까지 최근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는 질병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원인이 바이러스라는 점이다. 조류독감은 A형 바이러스, 에이즈는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HIVㆍ이른바 에이즈 바이러스), 사스는 코로나 바이러스, 구제역은 구제역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 바이러스에 의한 피해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정보 삭제·유출등 폐해 심각 1918년 스페인독감으로 5,000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지난 57년에는 치명적인 독감으로 200만명이 사망했다. 68년에는 돼지독감으로 100만명이 사망했으며 81년 미국에서 첫 환자가 보고된 에이즈의 경우 현재 보균자가 4,000여만명에 달하고 사망자는 2,500만명 이상으로 보고됐다.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조류독감으로 조만간 과거와 같은 치명적인 재앙이 인류를 덮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처럼 인류역사와 함께 계속되고 있는 바이러스의 실체는 무엇일까. 아이로니컬하게도 엄청난 피해를 주고 인류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 바이러스의 실체는 유전 정보를 가진 핵산과 이를 둘러싼 단백질 껍질이 전부인 아주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생물학적 바이러스가 온통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가운데 컴퓨터 바이러스의 출몰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생물학적인 바이러스가 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컴퓨터 바이러스도 사용자 몰래 자기 자신을 다른 곳에 복사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초창기에는 컴퓨터 바이러스가 단순한 골칫거리로 인식됐지만 이제는 사회 근간을 뒤흔드는 현대판 전염병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는 85년 발생한 브레인(Brain) 바이러스로 파키스탄의 프로그래머가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의 복제품이 성행하자 사용자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데이터를 파괴하는 악성 바이러스를 유포한 것이라고 한다. 그 뒤를 이어 88년 예루살렘대학에서 13일의 금요일에 맞춰 실행되는 예루살렘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우리나라에는 88년 이 같은 바이러스가 유입됐으며 이에 대항한 백신 프로그램이 최초로 개발되기도 했다. 이처럼 처음 모습을 드러낸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6만종이 훨씬 넘는 바이러스가 출몰하고 있다. 컴퓨터가 이제 따로 존재하는 섬이 아닌 이상 이런 바이러스 침투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모든 것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대표적인 게 휴대폰 바이러스다. 휴대폰 바이러스는 사용자 정보나 사용자가 저장한 응용프로그램을 변경 또는 삭제, 유출하거나 사용자가 요청하지 않은 데이터를 계속 요청하기도 한다. 때로는 시스템 리소스(메모리 등)를 끊임없이 소모해 단말기 성능을 떨어뜨리거나 사용자 주소록을 이용해 임의로 다량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PC 바이러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지난해 6월 노키아 휴대폰 단말기 일부에 ‘카비르(Cabir)’라 불리는 바이러스가 나타난 것이 그 시초였으나 그 이전에도 2000년 6월 스페인에서 ‘티모포니카’ 웜이 발견됐고 2001년 6월 일본에서는 NTT도코모의 ‘I-Mode’ 어플리케이션 악성 코드가 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백신 연구개발등 서둘러야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하듯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 업체인 노키아는 지난달 5일 시만텍과 계약을 맺고 일부 휴대폰 기종에 안티바이러스시스템을 탑재하기로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것이다. 우리도 더 이상 생물학적 바이러스와의 싸움에만 몰두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다. 생물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의학자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또 다른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컴퓨터와 휴대폰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컴퓨터 바이러스와의 또 다른 싸움을 위한 예방과 준비는 유비쿼터스 세상을 지혜롭게 준비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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