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이 반할만한 이야기라는 느낌 와… 생동감 넘치는 색다른 춘향 기대하세요"

■ 창극 '춘향가' 파란눈의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
유머 담고 영상 장치 활용해 모든 세대 공감할 작품 만들 것
11월20일부터 국립극장 공연


서양인 셰프가 만드는 된장찌개는 어떤 맛일까. 외국인 연출가가 한국의 대표 사랑 이야기 춘향전을 무대에 올린다. 그것도 한국인조차 낯설게 느끼는 전통 장르 '창극'으로 말이다.

11월 개막하는 창극 '춘향가(가제)'를 지휘할 파란 눈의 연출가. "새로운 해석으로 춘향전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연출 거장 안드레이 서반(사진)을 만났다.

안드레이 서반이 창극 연출을 부탁받은 건 1년 전이다. 당시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부임하자마자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그를 찾아가 작품을 건넸다. "처음 의뢰받았던 작품은 춘향전이 아닌 흥보가였어요. 판소리의 독특함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콘셉트나 이야기 전개를 두고 협력연출가인 아내와 이견이 있었어요. 답이 안 나왔다고 할까." 작품을 정중하게 사양한 그에게 다시 전해진 작품이 바로 춘향가였다. 줄거리를 읽자마자 "촉(feeling)"이 왔다. "사랑, 한 여인의 인내와 저항, 변 사또로 대변되는 구태한 정부 등 춘향전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이야기였어요. 왜 이 작품이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는지를 알겠더군요." 한 개인이 불합리한 사회에 맞서 저항하는 가치 있는 행동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제아무리 좋은 줄거리를 갖고 있다지만, 그 이야기를 한국인들도 어려워하는 창극으로 풀어내는 작업은 부담인 게 사실이다. "언어의 장벽이 가장 커요. 판소리 자체가 고어로 쓰여 있는 데다 음악 자체도 대중적이지 않아 익숙해지는 데 시간도 걸리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소리 특유의 울림과 귀에 맴도는 멜로디는 안드레이 서반의 도전의식을 자극했다.

11월 공연을 앞두고 이제 막 작품 설계에 들어간 그는 "남들과 똑같은 방식의 연출은 시간 낭비일 뿐"이라며 또 다른 색깔의 춘향전을 예고했다. "셰익스피어의 여러 비극에 동반되는 게 유머에요. 상당한 유머가 작품에 녹아들어 갈 겁니다. 영상을 활용한 무대 연출도 생각하고 있고요." 구체적인 캐릭터와 이야기 설정에 대해서는 "작품을 보면 알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오페라를 제외하곤 특정 국가의 전통 장르 연출에 처음 도전한다는 그는 "이번 작품이 젊은 관객들로 하여금 창극과 판소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전통 장르가 노년층만 누리고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가 됐으면 합니다. 저도 춘향가를 소통할 수 있는 생동감을 담아 만들고 싶고요."

국립창극단의 세계 거장 시리즈로 진행되는 창극 춘향가(가제)는 11월 20일부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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