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삼륜 근본적 개조로 국민불신 씻어내야

법관-정의·균형감, 검찰-자제력, 변호사-봉사자세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
공부만 많이 했다고 법조인 믿던 시대 지나… 인간적 신뢰쌓기 노력을
로스쿨·법조 일원화… 다양한 인재 끌어들여 사법개혁에 도움될 것


"법조인을 공부 많이 했다고 무조건 신뢰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인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당사자와 유대관계를 맺는 일이 중요해졌습니다."

올해 초 영화 '부러진 화살'로 촉발된 사법 불신 분위기가 잠시 잠복기를 거치다가 다시 불거지는 양상이다. 수원 20대 여성을 납치·살해한 오원춘에 대한 항소심 무기징역 감형 처벌을 두고 이어지는 국민의 거센 질타 역시 불신 풍조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사법부뿐만이 아니다. 검사와 변호사도 불신의 대상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대중은 여전히 권력을 추구하는 검찰, 영리만 쫓는 변호사의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불신의 뿌리는 깊지만 신뢰를 회복하려는 '법조 삼륜(三輪)'의 노력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법무법인 화우의 양삼승(65ㆍ연수원 4기ㆍ사진) 고문변호사는 일찌감치 법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사실 그가 사용한 단어는 개혁이 아니라 개조다. 판사ㆍ검찰ㆍ변호사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원천적인 변화에 중점을 두고 현재를 개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 고문변호사는 "사법개혁이라고 하면 사법부만 대상으로 삼는 것인데 지금 필요한 건 넓은 의미에서의 개혁, 즉 법조개혁"이라며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법조가 국민의 신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개조라는 단어가 적합하다"고 말했다.

양 고문변호사의 주장은 그가 최근 출판한 책 '법과 정의를 위한 여정'에 잘 나타나 있다. 판사로 일할 때 느꼈던 점을 남긴 회고록과 에세이, 신문에 기고한 칼럼 등을 묶어낸 책의 말미에는 '법조개조론'이라는 묵직한 논문이 실려 있다. 양 고문변호사가 지난 2010년 사법개혁과 관련해 열린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요약한 것이다.

논문을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은 '사법부는 기를 북돋아줘야 하고, 검찰은 기를 눌러줘야 하며, 변호사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이다. 양 고문변호사는 "법관은 정의감과 균형감을, 검찰은 자제력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며 "변호사는 창의성을 가지고 봉사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조개조론'은 유신 시대부터 민주화를 거쳐 현재까지 사법사 전반을 돌아보며 우리나라 사법사를 평가한다. 논문 군데군데 판사ㆍ검사ㆍ변호사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이 눈에 띈다. 그는 '1987년 6ㆍ29 선언 이전부터 법관생활을 해온 계층한테는 훨씬 강도 높은 정의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검찰을 '외부의 정치적 요구를 사법부에 전달하는 법적 통로'라 정의하고 검찰의 정치권력화를 강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양 고문변호사는 "법조인에 대한 비판을 하면 '네 말이 옳다'고 동의하던 법조인들이 공식 석상에서는 점잖은 소리만 하는 경우가 많다"며 "쓴 소리, 싫은 소리라도 진짜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거침없는 비판의 배경에는 양 고문변호사 개인의 경험이 자리한다. 그는 "법관 초년병 시절 1980년대 신군부 정권 아래 국가보위 입법회의에서 4개월 동안 일하며 국가가 저지르는 불법을 똑똑히 봤다"고 말했다. 권력에 대한 반감은 부조리를 보고 목소리를 높이는 성향으로 이어졌다.

서울형사지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때, 그는 검사가 10년 이상의 구형을 한 경우 법원이 무죄 또는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하더라도 구속영장의 효력을 잃지 않도록 한 형사소송법 331조 단서에 대해 위헌제청신청을 해 위헌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후 1999년 대전 법조비리 사건에 연루됐다는 오명을 얻고 스스로 법복을 벗은 이후에도 법조계에 대한 치밀한 관찰을 이어갔다. 양 고문변호사는 "밖에서 보니 안이 더 잘 보인다는 말이 실감났다"고 전했다.

45년을 법조인으로 살아온 양 고문변호사의 눈에 포착된 문제는 비단 법조 불신만은 아니다. 양 고문변호사는 법률시장의 위기를 언급하며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변호사들도 살기 어려워져 간다"고 우려했다. 그는 "시장개방 등의 여파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무조건 변호사 말을 믿어주는 시대가 지나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고문변호사는 "요즘 '내가 당신 병 다 아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의사는 없다"며 "법률전문가인 변호사 역시 의뢰인과 소통을 통해 인간적인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 고문변호사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제도와 법조일원화 역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을 법조계로 끌어들여 궁극적으로 사법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현재 같이 일하는 로스쿨생의 탁월한 능력을 직접 보며 그들의 장래가 밝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프로필



▦1947년 서울 출생 ▦경기고ㆍ서울대 졸업 ▦사시 14회(사법연수원 4기) ▦1974년 서울 민사지법 판사 ▦1977년 독일 괴팅겐 대학, 법원 연수 ▦1990년 헌법재판소 연구부장 ▦1998년 서울 고법 부장판사, 대법원장 비서실장 ▦1999년 법무법인 화백 변호사, 영산대 부총장 ▦2003년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2009년 대한변협 부협회장 ▦2012년 영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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