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의 만남, 격랑의 한반도] <상> 평화체제 첫걸음 떼나

비핵화·終戰체제 전환 촉매제 기대
남북, 한반도문제 해결 핵심주체로 자리잡아
북핵등 둘러싼 외교역학관계 근본적변화 예상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9일 서울 삼청동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회의실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준비기획단 1차 회의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왕태석기자


7년 만에 이뤄지는 남북 정상회담. 이번 회담은 비록 두번째 이뤄지는 남북 정상간의 만남이지만 회담의 의미는 7년 전의 그것보다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 북한의 비핵화라는 현실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지난 53년 종전 이후 이어져온 정전체제를 벗겨내고 '평화체제'로 들어서는 시발점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무대이기도 하다. 또 남북경협 확대를 통한 새로운 '북방경제'의 모형을 짜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서울경제는 이에 따라 평화체제 첫 걸음 떼나(상), 남북경협 분수령(중), 평화체제 이렇게 풀자(하)라는 제목의 시리즈(3회)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와 과제ㆍ해법을 점검해본다. 지난 2000년 6월 우리 국민은 환호의 뒤편으로 쓰라린 경험을 맛봐야 했다. 사상 첫 남북 정상의 만남을 통해 한반도 역사에 큰 획을 그었지만 불투명한 회담은 5억달러 불법 송금과 관련자들이 형틀에 갇히는 참담함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북한은 우리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미사일 발사와 핵 개발을 들고 나왔다. 지난해 7월 미사일 발사 당시에는 북한과의 제대로 된 접촉 라인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을 맛보기도 했다.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돌게 하기 위해 우리가 지불한 대가는 그만큼 컸고 ‘항구적 평화’를 예상했던 우리의 기대는 무너졌다. 1차 정상회담은 한반도에 ‘평화’라는 단어를 태어나게 하기 위한 ‘역사적 실험’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에는 또 한번의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50년 넘게 이어져온 한반도의 정전협정체제를 매듭짓고 ‘평화체제’라는 새로운 틀을 마련하기 위한 큰 무대가 펼쳐진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앞으로 3~4개월이 한반도의 명운을 가를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차 회담이 ‘과도기 속의 실험’이었다면 이달 말 2차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촉매제다. 사실 그동안 북핵 등 중요한 남북 문제에서 우리는 일정 부분 소외돼왔다. 6자 회담이 중요한 틀로 작용했지만 핵심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정상회담은 주체가 남북한 당사자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 정세에서 남한이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핵심 주체로 자리잡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그동안 남북한보다는 주변국의 이해관계에 얽혀 있던 한반도 문제에서 당사자들이 균형의 추를 잡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앞으로의 외교 일정과도 면밀하게 연계돼 있다. 남북회담의 메신저 역할을 해온 이해찬 전 총리는 9일 “9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주석,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4개국 정상이 각각 회담을 가지면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한반도에 큰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정상회담→APEC 정상회담(9월 상순)→한미 정상회담(10월 초)→4개국 정상회담(10~11월ㆍ추정)’으로 이어지는 ‘그랜드 플랜’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하노이 APEC에서 부시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한국전 종료를 선언하는 문서에 공동 서명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은 결국 이런 큰 그림 아래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8월 남북 정상회담은 정부도 인정했듯이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디딤돌이 돼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고 정상회담에서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느냐에 따라 ‘종전’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평화포럼대표’가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받아와야 할 물목들로 제시한 ▦남북 정상회담의 정례화 ▦종전선언을 포함한 평화체제 로드맵에 대한 김 위원장의 분명한 입장 ▦서울과 평양에 무관, 정무와 경제담당 국장급 공사 등이 상주하는 연락사무소의 상호설치에 대한 동의 등은 이번 정상회담의 필수적인 요소다. 노 대통령이 강조해온 ‘북방 경제’와 이를 위한 남북 경협은 어쩌면 이 같은 커다란 그림을 그리기 위한 구성물이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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