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ㆍ구세대 조화가 필요한때

최근 개봉돼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는 영화가 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등의 영화를 통해 이미 연기 잘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는 잭 니콜슨이 2시간 동안 한시도 빠지지 않고 열연하는 `어바웃 슈미트`다. 그는 평생 헌신해 일류 보험회사로 만들어놓으면서 정년퇴직하는 슈미트를 연기한다. 영화는 그가 퇴직 후 바로 부인까지 잃은 다음 느끼는 상실감과 고독을 그리고 있다. 퇴직 후 첫날을 타블로이드신문 낱말 맞추기로 시작한 슈미트는 소파에 누워 채널을 바꿔가며 TV를 보는 일밖에 할 일이 없다. 어느날 직장에 가보니 환송 파티 때 존경의 언사를 침 바르며 늘어놓던 새파란 후임자는 “모든 일을 컴퓨터를 통해 해결하는 것을 모토로 한다”는 일류대 경영학 석사 출신임을 강조하며 허세를 부린다. “자신이 벌여놓은 온갖 복잡한 작업들을 돕겠다”고 말하는 슈미트에게 돌아오는 것은 곤란한 표정에 “운동이라도 좀 하세요”라는 말이다. 사회에서 슈미트라는 인간의 `쓰임새`는 사라져버렸다. 지나온 인생이 그래도 의미가 있었음을 증명해줄 수 있는 건 가족이지만 그들마저 냉랭하다. 겉으로 묵묵하고 무기력하게 이 모든 일을 주워 삼키는 슈미트의 슬픔은 둔탁한 몸과 쭈글쭈글한 주름과 성긴 머릿결만큼이나 적적하고 황망하다. 요즘 세상은 지식이 있고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재능이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을 요구한다. 이제 회사도 그렇고 어떤 단체든지 능력 있는 사람은 연봉파괴ㆍ서열파괴ㆍ경력파괴를 하며 대접받는다. IMF 외환위기 이후 재계에 불기 시작한 서열파괴가 정부에도 불고 있다. 최근의 파격적인 장관급 인사가 검찰 고위간부 인사로 이어지면서 정부 각 부처는 대폭 물갈이 인사 전망에 술렁이고 있다. 영화 `어바웃 슈미트`는 요즘 우리 사회 사고방식에 깔려 있는 2분법적인 `늙은 피 배격`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최근 미국 기업경영에 왕년의 최고경영자들이 재영입되고 지난 15일 국가주석으로 젊은 후진타오를 당선시킨 중국은 장쩌민을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당선시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군부를 안정시키려 한다는 분석이다. 대내외적으로 불안한 요즘 개혁의 패기와 과단성 못지않게 어른들의 지혜와 훈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박연우(사회문화부 차장) yw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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