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용 노동부장관과 박인상 한국노총위원장의 25일 노정 합의문 발표와 이달말 김대중 대통령의 양 노총 위원장 면담은 정부의 국정 운영기조가 크게 변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정부는 그동안 「경제회복을 위한 구조조정」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노동계 파업에 대해서는 「법적 강경대응」으로 일관해 왔는데 앞으로는 노동계와 함께 구조조정을 이루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물론 「새로운 단체협약을 맺을 때에는 공공부문 개혁의 원칙과 취지가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토를 달기는 했지만 지난해 기획예산위원회가 마련해 공공부문 전사업장에 시달한 예산편성지침보다는 개별 사업장별로 노사가 자율적으로 마련한 단체협약을 우선 존중하겠다는 것이 합의의 근본취지다.
이에 따라 체력단련비 사실상 폐지 퇴직금 누진제 적용금지 학자금 융자제로 전환 등을 골자로 하는 공공부문 예산편성지침은 사실상 노사 자율 교섭에 맡겨질 것으로 보인다.
◇노정, 한발씩 양보했다=정부의 양보는 더이상 노동계와 대치하다가는 가뜩이나 어려운 국정운영이 총체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기 문이다.
정부는 IMF 한파에 따른 경제위기를 효과적으로 수습하자마자 고위층 집 절도 사건 고급 옷 로비의혹 서해 교전 현직 장관의 격려금 수수 등 눈돌릴 새없는 대형 사건에 휘말렸다. 이에 따라 집권 1년여만에 총체적 권력누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파업 유도 발언으로 민주노총에 이어 한국노총마저 정부·여당과 대립하게 만들어 이대로 두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세력이 없는 상황에 몰릴 지경이다.
노정간 합의가 도출될 때까지 한광옥 노동특위위원장 등 국민회의 인사들이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던 것도 내년 총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정부 여당의 고민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여기에 노동계도 현장 투쟁열기가 기대만큼 높지 않은 상태에서 파업 투쟁보다는 협상을 통해 정부의 양보를 끌어내는 것이 이롭다고 판단한 듯하다. 실제 한국노총이 지난 16일 강행한 「1일 경고파업」에는 5∼6개 사업장 노조만이 참여했을 뿐이고, 민주노총이 17일 강행한 시한부 총파업투쟁에도 이미 파업중인 노조를 제외하면 신규 참여노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앞길이 밝지만은 않다=노동부와 한국노총은 이달중 노사관계개선위원회를 설치, 노·사·정이 모여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및 근로시간 단축문제 등 노동현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노동문제가 이것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측 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24일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을 이유로 한 노동계의 모든 파업은 불법』이라며 『불법파업에 대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는 등 강경 대응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경총의 이같은 대응은 노정합의로 사용자측의 이익이 훼손되는 것에 대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 노정대화가 재개된다고 해서 서로간의 불신과 이해상충이 커 노사정위가 곧바로 정상 가동되거나 현안이 곧 해결될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여기에 경제회복을 위해 정부가 강력히 추진했던 구조조정도 노정합의에 따라 그 폭과 속도가 조절될 수 밖에 없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재홍 기자 JJ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