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키코 소송과 변론 생중계


3월 대법원은 대법원 재판의 공개 변론과정을 법원 홈페이지, 인터넷이나 TV 등의 매체로 생중계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국민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가치 판단이 필요한 중요 사건에 대해 재판과정을 공개함으로써 투명하고 열린 사법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높이고자 하는 취지이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키코(KIKO) 소송사건의 대법원 상고심 재판과정도 지난 18일 TV 등을 통해 생중계된 바 있다.

은행 불완전 판매 여부 쟁점 부상

키코는 '녹인(Knock-In)'과 '녹아웃(Knock-Out)'의 줄임말로 선물환계약과 유사한 파생상품계약을 말한다. 주로 수출 중소기업들이 수출거래에서 발생되는 환율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환율이 하향안정 추세를 보인 2000년대 중반부터 은행과 체결했다. 이 계약은 보통의 선물환계약을 변형해 특수한 조건이 들어가 있는 통화옵션계약이라는 특성이 있다. 계약 만기에 환율이 녹아웃 환율 이하로 내려가면 계약의 효력이 소멸하지만 녹인 환율 이상으로 올라가는 경우에는 풋옵션 계약금액의 2배(또는 그 이상)에 해당하는 외화를 약정 환율로 은행에 매도해야 하는 특수한 조건이 붙어 있다. 반면에 만기 환율이 녹아웃 환율과 녹인 환율 사이에 있게 되면 기업은 이익을 얻게 되는 구조다.

수출 중소기업들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예기치 않게 환율이 급등하자 큰 손실을 보게 됐다고 주장하면서 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책임소송을 제기했다. 그 소송건수가 100여건이 넘는 등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금융위기 이후 금융소비자 보호강화 움직임이 일면서 키코 소송도 더욱 주목을 받게 됐다. 대법원이 이 키코 소송 상고심 변론과정을 생중계 방송하기로 한 것도 바로 이런 점을 감안한 것이다.

키코 소송의 법률적 쟁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키코 계약이 민법 제104조의 불공정한 법률행위 또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상 불공정약관에 해당되거나 민법의 기본 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해 계약이 무효인지 여부이다. 둘째, 기망 또는 착오를 이유로 기업이 키코 계약을 취소하거나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셋째, 키코 계약 체결과정에서 은행이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위반해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는지 여부이다.

대부분의 하급심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쟁점에 대해서는 은행의 손을 들어준 바 있지만 세 번째 쟁점에 대해서는 엇갈리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18일 생중계 방송된 키코 소송 상고심도 이러한 법률적 쟁점을 다룬 것인데 역시 세 번째 쟁점이 제일 큰 쟁점사항이 됐다. 은행이 과연 수출 중소기업의 환위험 회피목적에 적합한 상품을 판매했는가와 은행이 상품을 판매할 때 기업에 충분히 설명을 잘 했는지가 중요 판단사항이 된 것이다. 즉 금융상품의 불완전 판매여부가 주된 쟁점이 된 것이다.

공개변론이 판결에 영향 줘선 안돼

대법관들이 이러한 법률쟁점에 대해 신중한 법리적 검토를 통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겠지만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이 사건의 재판 변론과정이 생중계 방송됨으로써 혹시나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걱정도 해본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금융소비자 보호강화 움직임이 이번 생중계와 결부돼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쳐서도 안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걱정이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법과 원칙에 따른 판결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