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장매물을 누가 쳐다보기나 하나요. 공장을 돌리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어 헐값에 나와도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추석연휴를 4일 앞둔 지난 21일 오전 울산지법 경매법정. 경매전문 업체의 한 직원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경기침체를 반영하듯 이날 경매에도 아파트ㆍ토지 등 30여개의 매물이 경매로 나섰다.
특히 이날은 평소와는 달리 경매에 나선 물건 중 공장이 10여개로 전체 물건의 3분의1에 달했다. 하지만 이날 경매에 나선 사람들은 공장매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이 때문인지 이날 경매에 올려진 공장매물 중 단 1건만 낙찰되고 나머지는 모두 응찰자가 없어 유찰되고 말았다. 그나마 낙찰된 공장도 이미 몇 번이나 유찰을 거듭한 끝에 감정가의 30%에 불과한 헐값에 가까스로 새 주인을 찾았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공장매물이 경매에 쏟아지고 있다”며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지난해보다 공장 경매물건 수가 대략 2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부도를 맞은 중소 제조공장들이 요즘 법원경매 매물로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 운영난으로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은행 차입금을 갚지 못해 담보로 맡겼던 공장이 경매로 넘겨지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공장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서지 않아 경매 낙찰가격이 갈수록 폭락, 중소기업의 가치를 더욱 떨어뜨리는 데 있다.
경매전문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들어 8월까지 법원경매에 나온 경기 지역 소재 공장물건은 총 968건. 지난해 같은 기간의 766건에 비해 무려 26% 늘어났다. 반면 매각 성사율을 의미하는 낙찰률은 33.4%에서 27.6%로 떨어졌고 감정가격 대비 낙찰가격을 나타내는 낙찰가율 역시 76.8%에서 71.1%로 내려갔다.
실제로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장계리 기계공장의 경우 감정가격이 50억7,152만원이지만 지난 7월6일 첫 경매 이후 지금까지 3번 유찰돼 오는 10월5일 4번째 경매를 앞두고 있다. 이 바람에 최저 입찰가격은 감정가격의 절반 수준인 25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울산시 북구의 한 아파트형 공장에서 제조업을 하던 K씨는 얼마 전 200평짜리 공장을 경매로 잃었다. 그는 “은행 대출금을 갚지 못해 올초 공장이 경매에 넘어갔다”며 “공장이 경매로 처분된 것도 안타까운데 낙찰가격이 턱없이 낮아 경매가격으로 은행 빚의 3분의1도 갚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공장설비 거래상황도 마찬가지다. 올들어 8월까지 총 5,114건의 매물이 접수돼 지난해 같은 기간 3,551건에 비해 44%가 늘어났다. 중진공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는 매물 8개 중 1개가 매각이 성사됐으나 올 들어서는 11개에 1개꼴로 매각률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울산 중소업체 L모 사장은 “운영자금을 겨우 마련해 공장을 돌리다 경매에 넘겨지는 것보다 스스로 문을 닫는 게 오히려 피해가 적다는 인식이 중소기업인들 사이에 팽배해지고 있다”며 “문제는 중소기업 대부분이 앞으로 당분간 상황이 별로 나아질 게 없다고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