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증시] (1) 총체적 난국추락 또 추락…자금조달기능 마비
증시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지수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가운데 고객예탁금은 연중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연초 종합지수는 1,059.04포인트로 출발, 네자릿수 시대에 안착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오히려 지난 8개월여 동안 30% 넘게 하락했고, 벤처기업 위주로 구성된 코스닥지수도 연초 대비 60% 이상 추락했다.
시중 부동자금이 은행권 100조원을 포함, 200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돌고 있지만 증시의 고객예탁금은 지난 5일 현재 8조118억원에 불과, 증시가 외면당하고 있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증시 관계자들은 증권시장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국민들이 계속 증시를 외면하게 돼 산업자금 조달기능의 마비와 함께 구조조정 지연으로 또다른 경제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증시 참여자들은 이러한 「증시 소외현상」은 신뢰와 비전 상실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한국경제의 건전한 성장에 대한 확신도 없기 때문에 증권시장에 투자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불건전 투자세력의 작전이 횡행해 증권시장은 투기판이라는 잘못된 인식마저 확산되고 있다.
증시의 대표적인 투자주체인 투신권을 포함한 기관투자가들은 고유기능인 증시안정판 역할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환매공포에 시달리며 올들어 제1의 주식 매도세력으로 낙인찍혔다.
투신상품은 더이상 매력적인 투자상품이 되지 못하고 있고 시중 부동자금도 자연히 투신을 외면함에 따라 투신은 기관투자가로서의 역할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기관이 제 역할을 못하고 주식을 내다팔다 보니 시가총액 상위종목들은 줄줄이 연중최저치 행진을 벌이고 있다.
연초 357조원에 달하던 시가총액은 7일 현재 250조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코스닥시장의 시가총액도 절반 가까이 줄어 53조원 내외에 이르고 있다. 무려 150조원이 넘는 돈이 허공으로 날아간 것이다.
외국인투자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외국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장으로 변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무분별한 외국인 따라하기로 나스닥지수의 등락에 따라 그 다음날 한국시장이 일희일비하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외국인이 주식을 팔면 「증시공황」을 논해야 할 정도로 시장은 취약해져 있다.
정부당국의 무사안일도 증시를 나락의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말 발표된 금융시장안정대책이 실제로 단행되는 데는 3개월이 넘게 걸렸다.
국회의 공전으로 법안통과가 지연되는 것도 시장의 안정을 해친 것으로 나타난다. 증시에서는 작전이 횡행하지만 감독당국은 종이호랑이처럼 비쳐지는 것도 문제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상장 및 코스닥 등록기업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도 큰 문제다. 일부 기업주들은 장기비전 없이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을 남발, 현금을 챙기는 데 급급하고, 심지어는 작전세력과 영합해 주가올리기에 나서기도 한다.
개인투자자들의 투자관행도 후진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개인들은 배당투자니 장기투자니 하는 얘기를 이미 경제학 교과서에나 나오는 것으로 치부하고 단기투자에 심취해 있다.
지수가 약세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방어적인 투자보다는 작전주에 목을 매는 단기투자에 집착, 또다른 후유증도 우려된다.
데이 트레이딩이 일반화되면서 경제와 기업에 대한 분석보다는 단기차트를 이용한 초단기 매매만이 마치 주식투자의 성공법인 양 왜곡되고 있다. 증권가에는 「내일 부도날 종목도 오늘 이익을 내며 사고 팔면 된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들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증시 관계자들은 이번 기회를 증시를 둘러싼 제도와 관행들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증시가 살아야만 산업자금이 안정적으로 조달되고, 위기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는 경제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시장이 투기판이 아닌 산업자금의 수혈을 담당하는 자본주의의 꽃으로 다시 피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는 토양을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영훈기자DUBBCHO@SED.CO.KR
입력시간 2000/09/0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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