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日 바둑영웅전] 세력, 주어놓고 지운다 제5보(75~100) 76으로 붙이는 수순을 보고 원성진이 말했다. “저게 바로 철한이의 주특기예요. 실리를 재빨리 차지하고 나서 상대방의 세력을 폭파하는 요령이죠.” 일본에 가있는 조치훈의 특기이자 프로 고수들의 공통적인 경향이 바로 이것이다. 세력을 주어놓고 나중에는 그 세력마저 마치 지우개로 지우듯이 쓱쓱 지워 버리는 그 지독한 노선. 흑77의 반발은 당연했는데 다음 순간 다시 펑첸의 완착이 나왔다. 선수라고 믿고 둔 79가 문제였다. 백이 그쪽을 외면하고 80으로 뚝 끊어 버리자 흑이 다급해졌다. 81에서 85로 패망선이라는 제2선을 기게 되어서는 흑의 자세가 참담하기 그지없다. 79로는 일단 참고도의 흑1에 잇고 싸웠어야 했다. 그것이면 최철한은 백2로 하나 밀어놓고 4로 붙여 수를 낼 예정이었다고 했다. 그때 흑은 5로 젖혀 강하게 싸우는 것이 최선이었다. 박영훈이 만든 가상도가 백6 이하 13이었는데 이 진행이었으면 백도 아직 안심할 수 없는 바둑이었다. 검토실에 들어온 최명훈9단이 형세판단을 해보더니 백승이 거의 확정적으로 보인다고 한마디. 백이 하변까지 완벽하게 확보해서는 더 이상 변수가 없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 입력시간 : 2004-12-09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