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매물 폭탄' 주가 상승 발목 잡는다

이달들어 IT·車관련주 등 1兆2,988억 팔아 차익 실현
투자자 펀드 환매요구도 한몫…당분간 매도세 이어질듯



기관투자가들이 원망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기관이 연일 대규모 물량을 처분하며 주가상승의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스피지수는 7일 장중 한때 1,415포인트까지 치솟기도 했으나 무려 4,355억원에 달하는 기관 매도 물량이 쏟아지는 바람에 1,400선에 턱걸이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들은 ▦주가 단기 급등 ▦투자자들의 펀드 환매 등을 이유로 당분간 기관의 매도 공세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단기급등 부담으로 매물 폭탄 쏟아내=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관은 이달 들어 총 1조2,988억원 규모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5월 이후 기관의 순매도 상위 10개 종목에는 삼성전자(-4,540억원), LG디스플레이(-1,773억원), 하이닉스(-1,060억원), LG전자(-883억원) 등 IT 관련 대형주와 현대차(-1,277억원) 등 자동차 관련 종목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기관들은 그동안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른 IT 및 자동차 관련 주식을 매도하며 차익을 실현한 셈이다. 한종석 KTB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 이사는 “IT나 자동차 업체들은 올 1ㆍ4분기 중 고환율을 바탕으로 한 수출 증가에 힘입어 비교적 양호한 실적을 올렸지만 단기간에 환율이 큰 폭으로 하락함에 따라 수출 실적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다”며 “기관들은 그동안 포트폴리오에 IT 및 자동차 업체들의 주식을 지나치게 많이 편입했기 때문에 비중을 줄이면서 수익을 실현하려는 욕구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 주식 시장이 지나치게 많이 올랐다는 인식도 기관의 매도 공세에 불을 지피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1ㆍ4분기 실적의 힘으로 1,400포인트까지 급등했지만 경제 여건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최인호 하나UBS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 상무는 “완만한 경기 회복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국내 기업들의 1ㆍ4분기 실적개선, 거시 경제 지표의 호전 등이 ‘추세’인지, 아니면 ‘반짝 현상’으로 그칠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고 밝혔다. ◇펀드 환매도 기관 매도 부추겨=투자자들의 환매 요청도 기관의 매도 공세를 가져온 원인 가운데 하나다. 이날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가 1,300포인트까지 오른 4월 한달 동안 국내 주식형펀드에서는 3,452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이달 들어서도 4일 현재 190억원의 자금이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유출됐다. 양정원 삼성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 상무는 “자산운용사에서 각각 10억원 정도씩 판다고 해도 이를 다 합치면 상당한 규모로 확대된다”며 “4월 코스피지수가 1,300포인트가 넘어서면서 환매 물량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식을 팔아야 하는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기관 매도 당분간 이어질 듯=자산운용업계 관계자들은 기관의 매도가 당분간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이사는 “IT나 자동차의 과도한 포지션이 해소될 때까지는 기관의 매도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형복 동양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도 “지금 상황에서는 공격적인 매수보다는 교체매매 정도만 가능한 상황”이라며 “기관이 주식을 살 만큼 사들인 상황인데다 주가가 오르면서 투자자들의 환매 욕구 강도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하반기부터 경제 여건이 안정되고 주가가 상승하면 환매보다는 신규 투자 자금이 유입되면서 기관의 매도세가 약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영일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경기지표가 개선되는 등 장기적인 시각이 좋아질지 여부가 관건”이라며 “신규 자금이 유입되면서 점진적으로 (기관 매도가)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도 “하반기부터 경제 상황이 안정되면서 자금이 유입되면서 기관도 매수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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