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아파트 후분양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다.이는 주택시장의 중심을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바꿀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논의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아파트를 짓기도 전에 분양하는 주택업체들의 선분양 방식으로 인해 제대로 완성된 집을 보지도 못하고 구매해야 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이에 따라 입주후 부실시공과 하자문제가 속출하거나 분양당시의 견본주택과는 다른 마감재ㆍ구조로 아파트가 지어지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났다.
선분양방식은 주택공급량이 수요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기에 정부가 고육책으로 선택했던 제도다. 자금이 부족했던 주택업체들이 소비자들로부터 먼저 분양대금을 받아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주택보급율이 전국적으로 100%에 육박하고 있다. 따라서 주택공급제도 역시 주택업체를 위한 대량공급방식에서 소비자를 위한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 후분양제도로 바뀌지 않을 경우 지난 몇 십년간 이어졌던 소비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최근 들어선 주택업체들의 분양가 인상을 놓고 이 같은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주택업체들은 사실상 소비자의 돈을 먼저 받아 사업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사업관리능력 취약 등으로 인해 발생한 금융비용 등을 그대로 분양가격에 전가시켜 아파트 공급가격을 과도하게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일반 아파트 매매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져 주택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서민들의 내집마련 부담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작년부터 공급된 아파트중 상당수는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에 분양됐다.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 지난해 5월부터 분양된 아파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분양업체들은 주변 아파트 시세보다 높은 값에 주택을 공급해 2~3년후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매매차익까지도 자사가 챙기게 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에 대한 주택업체들은 구구한 변명을 내놓고 있다. 주택건설에 드는 비용자체가 높아져 어쩔 수 없이 분양가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제시하는 사업비의 내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수 업체가 토지매입비용과 직접ㆍ간접공사비, 광고비, 견본주택 운영 비용, 금융비용 등을 과다하게 책정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후분양제도가 도입되면 주택사업비용이 그대로 분양가격에 전가돼 소비자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택업체들의 반론은 입지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미 선분양제도에서도 분양가에 사업비용을 미리 다 전가시켜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가 선분양제도를 용인했던 것은 나름대로 주택가격을 안정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양가격이 자율화된 시점에서는 이 제도를 계속 고집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은 선분양제도는 가격과 품질 경쟁력이 떨어지는 주택업체들의 생명만 연명해주는 보호벽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는 지난 97년 외환위기 직후 자금력과 시공능력, 인력 등이 크게 떨어지는 업체들이 선분양 방식으로 아파트를 공급했다가 부도를 내 소비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주택업체들이 이렇게 분양대금을 먼저 받아 놓고 중간에 부도를 내버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물론 일반아파트의 경우 대한주택보증에서 새 시공사를 뽑아 승계시공을 맡기거나, 사업추진을 중단하고 분양대금을 돌려주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입주지연이나 소비자의 금융비 부담이라는 피해는 완전히 보전될 수 없다. 또 다른 업체에게 승계시공을 맡길 경우 당초 시공사의 잘못으로 발생한 아파트 하자문제 등에 대해선 소비자가 하소연 할 곳이 없어 문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후분양제도는 이 같은 부실업체들을 솎아내 주택시장을 건전화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일부 주택업체들은 후분양방식이 도입되면 주택업체들이 사업비용을 조달하지 못해 다시 주택공급부족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주택업체 스스로가 모색해야 할 일이다. 주택업체들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가만히 제도의 보호막에 기대겠다는 도덕적 해이에 빠져선 안 된다.
<김재옥(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