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듯 이어질듯 하면서도 끝내 제자리 걸음하는 것이 대북경협인듯 싶다. 「지척이 천리」라는 말이 실감나듯 그들과의 첫 만남은 제3국에서 이루어졌다.내가 만난 북한의 모무역회사 총사장은 제법 국제감각이 있어 보였다.
중소기업과의 임가공 문제를 협의하는데 내가 제시한 여러 품목들을 제한 없이 수용하겠단다. 그쪽 근로자의 솜씨가 대단하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이렇게 장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은 막힘없이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께름직한 것이 있었다.
총사장과의 대화에는 30대와 60대쯤으로 보이는 감시자인지, 혹은 기록원인 듯한 두명이 배석했던 것이다. 이사람이 상부에 보고를 잘해야 일이 성사된다는 이쪽 안내인의 귀띔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1년여가 지난 지금 결과는 1개 품목이 거래가 진행중이고, 2∼3개 품목의 샘플제작(원자재제공)에 그쳤을 뿐이다.
우리가 원부자재를 저들에게 넘겨 주며 「리스크」를 안으면서까지 임가공을 추진하는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다.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과 유휴시설을 활용, 손쉬운 생산활동을 돕자는 것이다. 임가공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고 상호신뢰를 쌓아간다면 남북대화도 순조롭지 않겠느냐는 바람과 함께 통일비용도 그만큼 가벼워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지금 저쪽이 당장 목말라하는 것은 「쌀」이지만 우리쪽은 「임가공」제의를 아울러 수용해 주길 바라고 있다. 「고기」와 「그물」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그물만드는 방법(임가공)이 더 시급하지 않을까.
이러한데도 저쪽은 「열리는 쪽」이고 우리는 「열어야 하는 쪽」으로 뭔가 뒤바뀐 느낌이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야 하는 건데…. 이렇듯 대북경협에서 느끼는 씁쓸함이라니…. 북한은 최근 나진·선봉 자유무역특구에 대한 투자유치설명회에 우리측이 참석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 바 있다.
저들이야 무슨 생각을 하든 대북투자에 깊은 관심을 갖는 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한국이라는 점을 이번에 참여치 못한 우리 중소기업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에서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북관계는 북한의 공비침투 만행으로 정치는 물론 경협도 꽁꽁 얼어붙게 되었다. 경협에 있어서는 채찍보다는 당근으로 일관했던 우리의 노력으로 그나마 무게를 점차 더해가는 터에 이마저 이젠 한순간의 포말에 그치고 말 것같다.
아무튼 경협은 통일을 앞당기는 하나의 촉매일 수 있다. 인내를 가지고 계속 추진해야 할 것이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