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스타디움. 지난 2008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열렸던 이곳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짜릿한 우승 기억이 스며들어 있다. 이곳은 또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31ㆍ러시아)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지난 1998년, 16세의 이신바예바는 이곳 루즈니키스타디움에서 유스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장대높이뛰기로 따낸 생애 첫 금메달이었다.
모스크바세계육상선수권이 열린 14일(한국시간) 루즈니키스타디움. 15년 전 첫 금메달을 수확했던 바로 그곳에서 이신바예바는 마지막 힘을 짜냈다. 그는 당초 이번 대회를 끝으로 결혼과 출산을 위해 은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경기 뒤 이신바예바는 “선수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우승”이라며 “내년에 아기를 낳은 뒤 2016리우올림픽 때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신바예바는 이날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선에서 4m89를 넘었다. 2위 제니퍼 슈어(4m82ㆍ미국)를 7㎝차이로 따돌렸다. 2007오사카세계선수권 이후 6년 만에 나온 세계선수권 금메달이다. 4m89는 지난 2009년 취리히골든리그에서 이신바예바 자신이 수립한 세계기록(5m06)에는 못 미치지만 5m06을 넘은 이후 가장 좋은 기록이다. 어릴 적 ‘장대여제’로의 여정을 시작했던 곳에서 새 출발을 선언한 셈이다.
이 대회 전까지 이신바예바는 선수생활을 지속하는 게 힘겨워 보였다. 전성기 시절 세계기록을 28차례나 갈아치웠지만 2008베이징올림픽 금메달(5m05)을 끝으로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2009베를린세계선수권에선 메달을 놓쳤고 2년 전 대구에서도 6위에 그쳤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긴 했지만 기록은 4m70으로 부활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간의 마음고생을 홈에서 훌훌 털어낸 이신바예바는 온몸으로 홈 팬들의 일방적 환호에 화답했다. 펄쩍펄쩍 뛰거나 춤을 추는 것도 모자라 공중제비까지 돌았다. 이신바예바는 “부상과 난관을 이겨내고 다시 세계챔피언이 된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며 “최고의 응원이 있었기에 우승할 수 있었다. 나는 장대높이뛰기의 여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