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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후 일본서 디자인 공부
'에꼴 드 파리' 브랜드 잘나갔지만 금융위기 등 겪으며 끝내 사업 접어
신진 작가 작품 패션과 연계 아트 캐릭터 사업에 새로운 도전
"패션디자이너로서 제가 만든 것은 단순한 '옷' 이 아니라 '꿈' 입니다. 고객이 실현하고자 하는 환상 혹은 꿈을 그분들이 입는 옷을 통해 구현했던 셈이지요. 이제는
갤러리를 통해 미술가들을 접하며 그들의 꿈을 현실로 끌어내는 것이 저의 인생에서 소중한 목표가 됐습니다." 지난 1980~1990년대 주요 백화점 숙녀복 브랜드로
유명했던 '에꼴 드 파리' 의 수석 패션디자이너 겸 최고경영자(CEO)였던 이영선(66 사진)씨가 갤러리 대표로 변신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올 5월 서울 성북동
길상사 인근 대사관저들이 즐비한 곳에 갤러리호감을 오픈한 것. 이 대표는 "그동안 패션에 몸담아 살아오면서 미술에서 영감을 얻은 적이 많다"며 "미술과 패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존재 같은 것으로 갤러리를 통해 미술과 패션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캐릭터산업 등 다양한 사업 기회를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부모는 모두 이북 출신의 실향민이다. 평안남도 순천시에서 태어난 그는 갓난아기였던 1950년 1·4후퇴 당시 부모님의 품에 안겨 피난을 왔다고 한다. 일본에서 음악 강사로 일하던 아버지가 전쟁이 터지자마자 고향으로 건너가 4남매와 부인을 데리고 남으로 내려온 것이다. 전쟁으로 먹고살기도 힘들던 시절, 그의 부친은 퍼뜩 일본에서 인상 깊게 봤던 나일론 양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일론 원사를 어렵게 구해 집에서 양말을 짜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버선을 주로 신었던 시절이라 질긴 나일론 양말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대가족의 생활도 가능하게 됐다. 그러다가 외삼촌이 서울에서 세탁공장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이 대표의 가족은 상경길에 올랐다. 외삼촌은 이 대표의 아버지에게 스웨터나 양말을 짜서 팔면 사업이 된다고 조언했고 그의 가족은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었다. 이 대표 역시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일손을 거들면서 자연스럽게 의류산업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의류사업은 그의 운명이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여성이 반듯한 직장을 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현실을 절감했다. 그나마 문이 열려 있는 은행이나 공기업은 자신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에 취직할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명동을 거닐던 이 대표의 눈에 의상실이 들어왔다. 어릴 때부터 섬유를 접하면서 지냈던 터라 의류사업이라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 문화복장대학(당시에는 학원)에서 2년간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명동에 의상실 '에땅'을 차리고 실전을 경험했다. 의상실을 찾아오는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맞닥뜨리면서 국내의 낙후된 의류산업의 실체를 몸소 체험한 귀한 시간이었다. 1979년 롯데백화점이 들어서고 이듬해인 1980년 '롯데오리지널' 브랜드로 입점한 이 대표는 롱코트나 바바리 등 단품 위주로 생산해 백화점에 납품했다.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지만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열망은 그만큼 커져갔다. 그러던 차에 1986년 '에꼴 드 파리'라는 브랜드를 출시하게 됐다. "파리나 밀라노 등 세계적인 패션 도시에 가면 박물관과 미술관에도 꼭 들르곤 했어요. 1985년 '에콜 드 파리 피카소'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파리의 한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더군요. 제 패션디자인도 '에콜 드 파리(파리학파·제1차 세계대전 후 파리로 이주해온 외국인 화가 집단으로 샤갈이나 모딜리아니 등 야수파와 입체파)' 화가들이 선보인 개성존중의 예술정신을 따르고 싶었어요."
'에꼴 드 파리'는 이국적인 느낌을 풍기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사업이 크게 번창했다. 롯데·신세계·미도파 등 주요 백화점의 본점과 지점은 물론 지방의 주요 백화점에도 입점하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IMF 사태를 피할 수는 없었다. 부산의 태화백화점, 광주의 가든백화점, 진로백화점 등 전국 6곳의 매장이 부도를 맞으면서 본사에도 자금압박이 들어온 것. 그렇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사업을 접어야 할지 기로에 놓였던 당시, 중소기업진흥공단이 대한패션디자이너협회(KAFDA) 측에 수출하면 저리로 자금지원을 해준다는 제안을 했던 것. 회원사들과 뜻을 모아 미국에서 열린 패션산업박람회에 나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고 당시 중진공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자금난을 해소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렇게 몇 년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사업을 지속할지 고민에 빠지게 됐다. 대다수 여성 캐릭터 브랜드들이 대기업에 흡수되거나 아예 사라지면서 '에꼴 드 파리'를 자신의 힘으로 지속시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것이다. 결국 지난해 여성복 유통업체인 미도컴퍼니에 '에꼴 드 파리'를 넘기면서 한평생 이어온 섬유산업과의 인연은 끝을 맺었다.
올해 5월 이 대표는 평생 소중한 꿈으로 간직해온 과업을 현실로 이뤄냈다. 바로 갤러리호감을 오픈하며 미술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 이 대표의 성북동 자택 1층에 들어선 갤러리호감은 패션디자이너로서 살아오면서 미술에서 영감을 받았던 빚을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젊은 시절부터 영감이 안 떠오를 때는 갤러리나 미술관을 다니면서 허기진 영혼을 달래곤 했어요. 자연스럽게 미술작품도 한 점, 두 점씩 사 모으면서 언젠가는 미술과 인연을 맺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지요."
갤러리를 매개로 여러 작가들을 만나면서 이 대표는 미술과 패션산업을 연계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실력 있고 유망한 작가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지내는 사례를 참으로 많이 봅니다. 그들의 예술혼이 담긴 미술 작품을 활용해 다양한 캐릭터 상품을 만들어내면 작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소비자들은 예술적 가치가 담긴 소품으로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환갑을 넘어 새롭게 시작하는 제2의 인생이 많은 이들에게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영선 대표는 ▦1949년 평안남도 순천 ▦1972년 성균관대 경영학과 ▦1972~1973년 일본 문화복장대학 디자인 전공 ▦1974년 의상실 명동 '에땅' 운영 ▦1976년 코스모스백화점 맨스클럽 오픈 ▦1986년 에꼴 드 파리 브랜드 론칭 ▦1986~1988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전시 참관 ▦1998년 대한패션디자이너협회(KAFDA) 14대 회장 취임 ▦2002년 철탑산업훈장 수훈(디자인발전공로) ▦2012년 홍익대 대학원 최고위과정(미술사) 수료 ▦2013년 5월 갤러리호감 개관 |
플라스틱 의자 이어 붙인 순록·화강암 이용 첼로 형상 작품 한눈에 ■ 갤러리호감선 지금… 정민정기자 갤러리호감은 내년 1월10일까지 다양한 매체의 조각과 새로운 기법의 회화를 주제로 '카브앤드로(CARVE & DRAW)'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통적 재료인 대리석이나 철·브론즈 등으로 작업하고 있는 중견 작가들의 조각 작품은 물론 압축적이면서도 가벼워진 종이나 플라스틱 등 다소 이색적인 재료로 현대 조각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여섯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와 함께 종이 콜라주를 이용한 2차원적 평면회화를 선보이는 회화 작가 두 명의 작품도 선보인다. 김우진 작가는 현대사회 대량소비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값싼 플라스틱 의자를 이어 붙여 순록과 말 등 동물의 형상으로 표현했다. 임형준 작가는 소리와 음악의 선율을 화강암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웅장하고 톤이 낮은 첼로를 형상화한 작품을 내놓았다. 사공우 작가는 수많은 음표가 새겨진 한지를 여러 겹으로 세워 마치 바람에 속삭이는 새처럼, 음악의 감성을 2차원적 평면회화로 재해석했다. 또한 김희경 작가는 압축된 한지 조각을 이용해 격조 있는 색감과 요철을 통한 특유의 조형감을 보여준다. 김성복 작가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우직한 걸음을 힘차게 내딛는 인간의 형상을 조각으로 형상화했으며 신한철 작가는 다양한 구의 형태가 반복되고 변형되면서 작품 속 조각들이 무한으로 증식되는 과정을 조각물로 나타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가벼워지려는 조각, 무거워지려는 회화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조각과 회화의 새로운 미학을 감상할 수 있다. (02)762-3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