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파트의 `원맨쇼'는 끝났다. 40년 가까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국가 없는 국가 지도자로 행세했던 아라파트의 정치적 유산은 비참하기 그지 없다.
그가 지난달 29일 헬리콥터에 실려 라말라를 떠나기 전 자치정부는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 아라파트가 떠나면서 가장 우려됐던 점은 권력공백을 틈탄 치안혼란과 정파간 치열한 권력투쟁이었다.
그러나 민족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자치정부를 위시한 제도 정치권과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등 비제도 정치권은 전례없는 단합을 과시했다.
아흐마드 쿠라이 총리와 마흐무드 압바스 전 총리 등 과도정부 실세들이 잇따라무장단체 및 정파 대표들과 만나 자제와 위기 극복을 약속했다. 아라파트의 장례식이 끝나는 이번주말까지 자치지역은 거국 단합과 우국 충정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애도기간이 끝나고 최대 60일간의 과도체제가 가동되면 상황은 달라질것이다.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대학의 아우니 알-카티브 교수는 아라파트의 사망이 자치정부와 특히 파타운동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아라파트가파타운동의 분열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며 아라파트의 퇴장으로 파타운동 내부의 해묵은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파타운동 내 잡다한 치안조직들은 언제든지 분열해 권력암투에 빠져들 가능성을안고 있다. 파타운동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안에서도 권력 중추조직에 해당한다.
아라파트가 심어온 권력은 급속히 약화되고 당분간 쿠라이-압바스가 이끄는 과도체제에 밀려날 공산이 크다.
주류정파인 파타운동의 분열과 반목은 하마스 등 이슬람 운동단체의 도전 보다더 심각한 걱정 거리이다.
파타운동의 저명한 지도자인 디야브 알-라우흐는 아라파트 사망으로 하마스 등반체제 조직의 발호가 예상된다는 우려를 일축했다.
그는 하마스 등 자치정부에 반대해온 단체들이 생각보다 훨씬 도덕적 의무감이 강하고 거국단합 의지도 강하다고지적했다.
물론 자치지역 최대 민중조직인 하마스의 제도 정치 참여는 포스트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정국의 최대 변수이다. 하마스는 내년으로 예정된 총선과 대선에도 참가할준비를 해왔다.
하마스의 제도 정치권 진입은 이스라엘에겐 악몽이지만 팔레스타인주민들에겐 성숙한 정치의 서막을 의미한다.
자치정부는 당분간 PLO 집행위원회와 자치의회, 총리의 권력분할 체제가 이어질전망이다. 문제는 정식 정부 수반을 선출하는 선거다. 기본법은 60일 내 선거를 실시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나 시일도 촉박하고 그 안에 돌출 변수에 따라 연기될 수 도있다.
압바스 진영이 기본법을 개정해 선거 대신 의회가 수반을 선출토록 할 경우 권력의 황금분할은 곧바로 깨질 수 있다.
PLO 정치국장 파루크 카두미의 행보는 더욱 주목된다. 그는 아라파트의 오랜 독립투쟁 동지였지만 자치지역으로 들어오지 않고 튀니지에서 활동해왔다.
그가 파리에서 아라파트의 병상을 지키면서 수하 여사와 반(反)주류 연대 구축을 시도해왔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분석가들은 내부의 혼란을 막고 순조로운 권력 이양으로 가는 최선책은 자유 선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진정한 선거를 통해 권력을 창출해야 한다는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자유 선거를 막으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강경 지도자들의 등장이 두려운 것이다. 대중의 지지를 누리지 못하고이들로부터 유리된 `국제신사'가 이끄는 자치정부는 유리보다 깨지기 쉽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