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이후 처음 소집된 24일 아랍연맹 외무장관 회의는 비록 미ㆍ영 연합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친미와 반미 진영으로 갈려 거친 설전을 벌이는 등 아랍권의 분열과 고뇌를 읽게 했다.
회의에는 나지 사브리 이라크 외무장관을 비롯해 16개국 외무장관들이 참석했으며, 나머지 국가들은 고위 외교관들이 대신 참석했다. 이번 외무장관 회의는 연 2회 열리는 정례회의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인권 상황 등 여러 현안들을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특수한 역내 상황에 따라 이라크 전쟁 중지 방안을 주의제로 다뤘다.
아므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회의 참가국들 가운데 쿠웨이트를 제외한 나머지 회원국 모두가 결의안을 지지했다고 말했지만 속내는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쿠웨이트는 본회의 개막에 앞서 “아랍 국가들이 쿠웨이트에 대한 이라크의 미사일 공격을 비난해야 한다”는 독자 결의안을 배포했으며, 바레인, 카타르 등 미군 주둔을 허용했던 국가들 역시 아랍권 전체의 이름으로 결의안을 채택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불편한 심기를 피력했다. 실제 카타르의 하마드 빈 자심 알-사니 외무장관은 “이번 회의는 단순히 아랍 대중의 여론을 달래기 위해 개최된 것”이라며 결의안 논의 도중 아예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중동문제 관계자들은 아랍권 국가 상당수가 여론을 의식, 미국의 카우보이식 무력공세를 비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친서방 실용주의 국가, 국수적 민족주의 국가, 보수 왕정국가 등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이해관계를 달리 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라크의 최대 교역국이며 이라크로부터 도입하는 원유의 절반을 무상으로 제공받는 요르단이 최근 1억7,700만 달러의 대미 부채 연장을 대가로 암만 주재 이라크 대사를 추방한 것도 경제적 실리를 챙기기 위한 행보로 풀이되고 있다.
특히 일부 아랍 국가들은 지금도 미ㆍ영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공개적인 반대 구호의 뒷면에서 은밀한 지원을 계속하는 표리부동한 정책을 펴고 있어 아랍권의 분열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구영기자 gy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