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 후에 현대그룹은 정회장의 삼촌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 휩싸이는 등 시련을 겪었지만 위기는 곧 기회였다.
경영권 분쟁이라는 비상상황은 그룹 계열사간 결속력을 높이고 `초보' 경영자였던 현정은 회장이 그룹을 조기에 장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현대그룹은 현 회장을 중심으로 옛 `현대'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목표 아래 현재 밑그림 그리기에 한창이다.
◆현정은 회장체제 안정적 구축 = 작년 10월말 취임한 현정은 회장은 경영 경험이 없다는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큰 무리없이 그룹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다.
KCC에 비해 자금력이 부족해 크게 불리했던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했고 그 와중에 가신그룹을 일부 퇴출시키는 결단도 보였다.
그룹 계열사 실적이 작년 하반기부터 크게 호전된 것도 현 회장 체제에 힘을 실어줬다.
현대상선은 해운업계 호황에 힘입어 올 1.4분기에 창사 이래 최대인 1천25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현대엘리베이터도 1.4분기에 사상 최대인 1천13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육로관광 활성화로 현대아산의 금강산관광은 전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고 개성공단 사업도 급물살을 타는 등 대북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대그룹은 정 회장 1주기인 4일부터 사흘간 현 회장과 그룹 사장단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금강산에서 신입사원 수련회를 진행한다.
계열사 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현대그룹측은 정 회장에 대한 추모의 자리보다는 그룹 재도약을 기원하고 결속력을 높이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그룹 `재건'준비 한창 = 현대그룹은 정몽헌 회장 1주기를 앞두고 중장기비전 마련에 한창이다.
이달 18일 공개되는 비전의 핵심은 당분간은 내실 다지기에 주력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미니그룹으로 전락한 그룹의 위상을 회복해 한때 재계를 주름잡았던 `현대'의 명성을 되찾는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 인수설이 현대그룹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재계 안팎에서 계속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실 `현대그룹 재건'은 정몽헌 회장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목표중 하나였다.
2000년 `왕자의 난' 이후 대북사업에만 전념하고 나머지 계열사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겼던 정 회장은 2002년 초 현대상선 등기이사로 등재하면서 경영 복귀에 시동을 걸었다.
정 회장은 당초 2002년말께 현대상선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공식적으로 그룹 회장으로 복귀, 그룹 재건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2002년 9월 대북송금 의혹 사건이 불거지면서 뜻을 접어야 했다는 것이 현대그룹 관계자의 전언이다.
따라서 현재 정 회장의 아내인 현정은 회장이 진행하고 있는 그룹 재건 노력은 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KCC 움직임 등 변수 많다 = 하지만 현대상선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그룹재건작업이 계획대로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그룹 주력사인 현대상선은 지금은 실적이 좋다고 하지만 해운업의 특성상 세계경제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장기적 계획을 잡기가 힘들다.
현대아산은 북핵 문제 등 국제 정세와 남북 관계에 의해 언제라도 `불똥'이 튈수 있다.
KCC가 과연 현대그룹 접수의 뜻을 완전히 접었느냐도 관심거리다.
KCC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처분하지 않고 있는 것을 두고 증권가에서는 현회장이 경영상 미숙함을 드러내면 KCC가 이를 물고 늘어져 경영권 인수에 재도전 할것이라는 관측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계열사 사장들간 알력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정몽헌 회장이 모든 책임을 안고 세상을 뜨고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그룹이 더욱 탄탄해졌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정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