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현종의 경제 프리즘] 살아남을 者 망할 者


‘천하’의 소니가 자신들이 만든 영화 ‘스파이더 맨‘에서 뉴욕 타임스퀘어광장 삼성전자광고를 일부러 지워버린 것은 지난 2002년. 한수 가르쳐 주던 삼성을 경쟁자로 의식하기 시작한 시기다. 그 소니가 지난해 말 삼성을 찾았다. 살아 남기 위해서다. 디지털 기술에서 처진 소니는 시장 탈환을 위해 삼성의 LCD 패널 기술이 필요했고 삼성으로서도 자본과 소니라는 고정적 판매처가 확보됐다. 최근 1분기 판매기준 마침내 세계 자동차 시장 1위 자리에 올라선 도요타. 밀어낸 GM에게 협력의 손을 내민 이유는 우선 시장 눈치보기다. 자국의 1등을 깨버렸다는 자존심 높은 미국 소비자들의 정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것. 그리고 상대와 차세대 연료전지차 개발을 통해 ‘공존공영’ 조약을 맺어 다른 경쟁자들을 함께 물리치려는 2중의 전략이다. 업계 최고 고수들끼리의 이 같은 전략적 제휴는 ‘컨버전스’의 시대, 산업ㆍ기술간 경계를 허물며 과거 볼 수 없던 형태로 앞으로도 더욱 퍼져나갈 것이 확실하다. 특히 선두 기업간 연합은 후발 업체들의 추격을 불허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어 신생 기업들의 시장 살아 남기는 더욱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런 상황이기에 최근 정보기술(IT)업계에 나타나고 있는 샛별들의 골리앗에 대한 도전은 매우 흥미로운 볼거리다. 세계 시장 점유율 70%가 넘는 시장 지배적 제품에 도전하는 대항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 경우가 웹브라우저 시장의 모질라 파이어폭스. 파이어폭스는 인터넷 검색 프로그램으로 기존 제품보다 다양한 기능으로 시장 점유율 90%를 자랑하는 MS사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MP3 분야 세계시장의 최강자인 애플의 아이포드(iPod) 아성에 도전하고 있는 우리의 중견기업 레인콤의 경우도 한 예다. 이밖에도 게임기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비슷한 현상은 적지 않다. 선두업체간 손잡기로 사실상 과점(寡占)의 상황에도 다윗의 골리앗에 대한 끝없는 도전과 성공은 글로벌 시장에 절대 강자와 지존은 없다는 시장 추세를 보여주는 사례들이기도 하다. ▲기업 생존의 주기가 더욱 짧아져가는 글로벌 시장 속 발군의 선전(善戰)을 하는 일부 한국 기업들의 성적은 스스로 보기에도 신통한 측면이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세계 시장 1등 제품은 60여개. 주로 PDP LCD OLED 플래시 메모리 DVD 플레이어 등 상당 부분 전망 밝은 IT군(群)으로 우리에게 자신감을 주는 일이다. 아직 1등은 아니지만 수년 전까지도 ‘싸구려 차’라는 비아냥을 넘어서 미국 시장내 돌풍을 일으키며 최근 미국 앨라배마주 현지 공장을 가동시킨 현대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케빈 케네디의 ‘1백년 기업의 조건’(Going the distance)에 따르면 세계 기업 평균수명은 13년. 30년이 지나면 80%의 기업이 사라진다. 한국의 경우도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한 1955년 매출 상위 100대기업 중 반세기가 지난 현재까지 100위 권에 남아있는 기업은 7개에 불과하다. 국내 벤처 1호이면서 매출액 2조원을 넘긴 삼보컴퓨터가 하루아침에 법정 관리에 들어간 게 최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 남아 주변국들의 벤치 마킹이 되고 있는 우리 글로벌 기업들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솔직이 걱정이 앞선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돌궐제국의 명장 톤유쿠크 비문(碑文)속 글은 21세기 기업들을 향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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