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 사장은 지난달 신규투자용 자금을 구하기 위해 몇몇 벤처캐피털회사를 찾았다가 퇴짜를 맞고 말았다. 2년 전에 회사를 차려 매출도 10억원을 넘어섰고 해외로부터 잇따라 제휴요청까지 받았지만 사업성이 불투명하다는 석연찮은 이유 하나만으로 투자해줄 수 없다는 한결 같은 답변만 들어야 했다. 정부가 올들어 모태펀드 출자를 확대하는 등 벤처기업 지원에 적극 나서면서 벤처캐피털의 투자여력이 크게 확대됐지만 정작 벤처기업들은 필요한 자금을 제때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벤처캐피털사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위험이 높다며 몸을 사리는 바람에 창업초기단계의 기업일수록 극심한 돈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29일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9월말까지 신규 결성된 벤처투자조합수는 모두 48개로 결성금액만 7,61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33개 투자조합이 5,145억원의 펀드를 결성한 점을 감안하면 48%나 급증한 것이다. 이처럼 벤처투자조합 결성규모가 크게 확대된 것은 정부가 금융위기로 유동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ㆍ벤처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모태펀드 출자금액을 큰 폭으로 늘리고 조성시기도 예년에 비해 훨씬 앞당겼기 때문이다. 실제 올들어 9월까지 결성된 모태펀드 조합의 결성금액은 6,860억원으로 전체 벤처투자조합 규모의 90%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 투자가 늘어나면서 벤처캐피털의 투자여력은 확충됐지만 실제 투자집행은 당초 기대치를 훨씬 밑돌아 벤처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벤처캐피털사들은 올들어 지난 9월까지 374개 업체에 5,798억원을 투자하는데 그쳐 지난해 같은기간의 371개사, 5,715억원에 비해 오히려 줄어드는 등 정부 지원자금의 혜택이 산업현장에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형수 벤처캐피탈협회 상무는 이에 대해 "정부의 노력으로 투자조합 결성은 일단 확대됐지만 민간기업인 벤처캐피털 입장에선 아직까지도 코스닥 등 회수시장이 불안정하다고 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늘리기에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벤처캐피털사들이 투자를 꺼리다 보니 창업한지 7년이 넘는 후기기업에만 투자가 집중될뿐 창업초기의 기업은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올들어 후기기업에 대한 투자금액은 2,281억원으로 투자된 금액의 39.3%를 차지한 반면 창업한지 3년이 넘는 중기단계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1,826억원으로 31.4%에 머물러 있다. 특히 창업한지 3년 이하의 초기기업은 투자비중이 29.1%로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지난해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비중이 38.2%로 가장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벤처캐피털사들이자금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은 초기단계의 기업에 대한 투자를 크게 줄인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벤처캐피털이 금융위기 등을 의식해 자칫 경영난에 시달리거나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초기 단계의 기업보다는 어느 정도 성장궤도에 올라 당장 몇년안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업들 위주의 안정적인 투자에만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