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슨 멀티미디어 인수/배순훈 대우전자 회장(결단의 순간)

◎“TV생산 세계 1위 목표 망설임 없었다”/5천명 추가 고용 의욕적 투자계획/불 「자국 업체에 인도」 방침 뒤집어/“MIT박사 학위보다 더 어려웠다” 당시 회고『대우전자가 왜 외국기업입니까. 대우의 프랑스공장이 몇개나 되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세계 4위의 가전업체인 톰슨멀티미디어사를 프랑스 정부가 민영화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배순훈 대우전자회장이 회의석상에서 만난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배 회장은 톰슨멀티미디어 인수에 관심은 있었지만 「공기업 인수자를 자국기업으로 국한한다」는 프랑스 정부방침을 전해듣고 김 회장에게 의논을 했던 것이다. 이때 나온 김 회장의 대답은 그에게 힘을 주었다. 배 회장은 『한번 해보자』며 임직원들을 독려하여 프랑스정부의 문을 두드렸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다. 안되리라던 당초 예상을 뒤엎고 대우는 5천명 추가 고용과 의욕적인 투자계획을 내세우면서 자신 보다 큰 톰슨멀티미디어를 인수하게 됐다. 공기업 민영화는 의례 자국기업에 넘길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발상이 이번 인수전의 결정적인 성공 배경인 셈이다. 다른 기업들은 「자국업체 인수」라는 프랑스 정부의 방침이 정해진 후 모두관심을 갖지 않았다. 때문에 대우는 인수전에서 별다른 경쟁 한번 치르지 않고 승자의 환희를 경험하게 됐다. 『톰슨의 인수에 대한 결단은 쉽게 이루어졌지요. 가전부문의 세계화는 오래전부터 추진해온 그룹의 방침이었기 때문입니다.』 배 회장은 결단의 순간을 오히려 쉽게 설명했다. 「컬러TV 세계 1위생산업체」라는 목표는 5년전부터 추진해온 그룹의 과업이었기에 거대기업 톰슨의 인수를 결정하는 순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톰슨 인수에서는 김우중 회장이 뒤에서 든든히 밀어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김 회장은 톰슨인수로 고심하고 있던 배 회장에게 『정치적 영향력이 필요하면 이야기 하라』고 까지 말했다. 시락 대통령과 파리시장 시절부터 익히 친해왔던 터라 필요하다면 거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 회장은 혼자서 해보겠다고 했다. 이는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프랑스에서 공기업 인수가 결코 정치적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수가 결정되기 까지 모든게 잘 풀린 것은 아니었다. 공기업 인수자에 대한 심사를 프랑스는 해당부처 보다도 언론과 관련부처가 더욱 까다롭게 했다. 이 때문에 지난 6월 제안서를 제출한 후 3개월여 동안 현지 언론과 30여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담당관청인 산업부는 물론이고 외무, 통신부 관료까지 모두 만나 정상화 방안을 설명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배 회장은 『이 심사과정은 미국(MIT공대)에서 박사학위 받을 때 보다 더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배 회장은 이번에 톰슨을 인수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초대형 기업을 민영화하는 프로젝트였기에 국내 같으면 특혜시비로 들끓었을 일이지만 프랑스의 경우는 오히려 조용했다. 단돈 1프랑이라는 「특혜성」조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인수과정이 민주적인 결정절차를 거치고 있다는 점과 결정된 후에는 한 줄의 잡음 조차도 없는 점이 부러웠다. 지난 80년 한국중공업 인수과정에도 참여해 공기업 인수과정을 익히 알고 있던 그 인지라 이번 프랑스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너무도 많았다는 것이다. 배 회장은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인수에 성공했지만 앞으로 남은 일이 더 걱정이다. 적자기업을 회생시키는 것은 더욱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톰슨에도 「탱크주의」를 가져가 앞으로 5년안에 세계 1위의 가전업체를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배 회장의 야무진 포부다. <민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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