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 판결] <8> 한빛투신운용 펀드 불완전판매

"보조자료라도 잘못된 정보제공땐 손배 책임"
투자설명서·약관 이외에 별도제공 계획서·광고지도
투자자보호의무 엄격 적용
상품정보 설명 형식보다 내용 중시하는 판결 이어져

자산운용사에 투자를 맡겨 수익을 내도록 하는 '간접투자'는 오늘날 일반화된 투자 방식이다. 간접투자가 성공하면 투자자와 자산운용사는 물론 상품을 판매한 증권사나 은행도 이득이다. 하지만 예상 밖의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면 소송과 같은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자산운용사 등이 '고객에게 투자 상품의 위험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불완전판매 등의 이유를 들어 투자자들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거는 것이다.

자산운용사나 증권사는 이러한 소송에 대비해 법에서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한 투자설명서나 약관 등을 통해 고객에게 투자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은 투자자에 대한 위험고지 의무를 지켰더라도 송사에 휘말리기도 한다.

투자자에게 투자설명서와 약관으로 올바른 정보를 전달했더라도 이와 별도로 제공한 투자운용계획서나 광고지, 질의응답(Q&A) 자료 등 비공식인 자료에 오해할 만한 정보가 포함돼 있다면 금융회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어서다.

이런 판단을 이끈 대법원 판결은 지난 2007년에 나왔다. 비씨카드가 "펀드에 부실 대우채를 편입시키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며 한빛투자신탁운용(현 우리투자신탁운용)을 상대로 낸 소송이었다.

당시 소송에서 주된 분쟁 대상은 1장짜리 메모 형식으로 작성된 운용계획서였다. 한빛투신운용이 만들고 펀드를 판매한 삼성증권을 통해 비씨카드에 전달된 메모에는 신용평가등급에 따른 구체적인 투자계획이 담겨 있었다. 기업어음의 경우 A3- 이상, 회사채는 BBB+ 등급 이상, 금융기관채는 A0등급 이상에 투자한다는 등의 예시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비씨카드에 판매된 펀드에는 대우 계열사의 회사채 등이 편입돼 있었는데 당시 각 계열사의 신용등급은 ㈜대우 B, 대우자동차 B, 대우중공업는 B+, 대우캐피탈는 B+ 등에 불과했다. "한빛투신운용이 운용계획서에 나온 투자 기준을 밑도는 회사채 등에 투자함으로써 손해를 봤는데 이는 일종의 약속 위반이자 투자자를 속인 행위"라는 게 원고인 비씨카드의 주장이었다.

피고인 한빛투신운용은 '상품과 관련한 공식 자료인 투자약관과 설명서에는 신용평가등급에 따라 제한에 둔다는 내용이 전혀 없었고 운용계획서는 투자자 모집을 위한 참고자료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2002년 4월 선고된 1심 판결에서는 비씨카드가 승리했다. 서울지방법원 민사21부는 "운용계획서가 증권투자신탁계약의 중요 요소인 재산의 운용방법을 제시했으므로 당사자 간의 구속력 있는 약정이라고 봐야 한다"며 비씨카드 손해액의 70%인 24억4,000만원을 물어주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2004년 8월 서울고등법원이 판결한 2심에서는 반전이 일어났다. "운용계획서는 참고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메모식의 1장짜리 문서이며, 일정 등급 이상의 회사채 등을 편입시킨다는 것을 예시적으로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는 게 2심의 판단이었다.

대법원까지 이른 소송전의 마지막 승자는 투자자였다. 대법원은 '운용계획서가 기속력이 없는 문서'라는 2심의 판단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러한 비공식적 자료를 통해서라도 투자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투자자가 투자에 뒤따르는 위험성이나 투자내용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도록 했다면 자산운용사의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1장짜리 메모라는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투자자 보호의무'라는 실질이 관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손해배상액도 1심의 판결을 유지해 손해액의 70%로 정했다. 통상 법원이 자산운용사의 투자 설명 부족 등을 인정하더라도 투자자 역시 '손실을 막기 위한 자발적인 노력 부족' 등의 책임을 물어 배상 비율은 40~50% 정도에 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원고와 피고가 합의 과정을 거쳐 배상 비율은 60%로 갈무리됐다.

대법원 소송에서 원고측 변호를 맡아 승소를 이끌어낸 조정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소송 과정에서 운용계획서의 법적 구속력과 상관없이 투자자가 오해할 만한 정보가 전달됐다는 사실을 부각해 자산운용사가 투자자보호의무를 져버렸음을 입증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아울러 "법원이 2000년대 중반 이후 투자 실패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데 다소 보수적이었음을 감안하면 손해액의 70%를 물어내라는 판결을 이끌어 낸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투자설명의 형식보다 실질적인 내용을 따지는 기조는 이후 판결에도 이어졌다. 대법원은 2011년 7월 펀드 투자자 8명이 유진자산운용과 경남은행을 상대로 "장외파생펀드의 고수익성만을 강조해 투자 위험성 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투자 손실을 입었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자산운용사와 은행 모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선고했다.

이 사건에서도 역시 펀드의 Q&A 자료와 상품요약서 등 보조자료가 문제였다. 유진자산운용이 보조자료에 펀드의 신용평가 등급을 매우 높다고 강조한 반면 원금손실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작은 글자체로 써놓아 투자자 보호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한빛투신운용 사례와 마찬가지로 "(투자 관련 공식자료인)투자설명서에 충실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투자자보호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며 자산운용사와 은행에 손해액의 25~40%를 물어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2012년 11월 선고한 사모형 부동산투자신탁 관련 손해배상 판결에서도 운용계획서 등 보조자료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일관되게 물었다. 투자상품의 종류를 막론하고 투자자 보호의무를 철저하게 인정한 셈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한빛투신운용 손해배상 판결은 투자상품을 파는 증권회사뿐만 아니라 증권회사에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자산운용사에도 손해배상 책임을 엄격히 물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판결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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