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넷 세상을 만들자] 아예 컴퓨터를 꺼라?
[기고] 이홍섭 정보보호진흥원 원장
이홍섭 정보보호진흥원 원장
지방을 다니다 보면 담장 없는 관공서나 학교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1995년 경북 의성군이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담장을 허물고 군청을 개방한 이래 전국적으로 ‘관공서 담장 허물기’ 바람이 거세게 불었기 때문이다.
전기ㆍ가스ㆍ상하수도ㆍ교통수단과 마찬가지로 현대사회의 필수 공익설비(utility)로 자리잡은 인터넷은 지난 1969년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 ARPA) 과학자들이 상호 정보공유를 목적으로 각자의 컴퓨터를 개방하면서 비롯됐다. 초기 인터넷을 「ARPA-Net」라 부르는 것은 이런 유래 때문이다.
담장을 허문 관공서를 물리적으로 보호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중요 서류가 든 캐비닛이나 서랍을 자물쇠로 단단히 잠그고 경비원이 수시로 순찰하면 그런대로 도둑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관공서 컴퓨터를 제대로 보호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나 홀로(stand-alone)’ 컴퓨터라면 컴퓨터가 든 방의 문단속을 잘 하면 된다. 하지만 요즘 컴퓨터는 거의 모조리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다. 우리나라에 이런 컴퓨터가 3,000만대다.
‘개방’과 ‘자율’을 양대 정신으로 탄생한 인터넷에 ‘보안’과 ‘규제’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인터넷에는 이 두 개념을 어느 정도 아우른 ‘정보보호’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정보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정보의 바다’라 불리는 인터넷이 걷잡을 수 없이 오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인터넷은 그 무진장한 편익만큼이나 해킹, 바이러스, 스팸메일, 개인정보 침해 등의 부작용에 휘말릴 수 있다. 필자처럼 정보보호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부작용을 ‘정보화 역기능’이라 부른다.
‘가장 안전한 컴퓨터는 꺼 버린 컴퓨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웃자고 하는 농담일 뿐, 요즘 세상에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는 한 마디로 ‘깡통’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같은 논리로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으면서 정보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는 컴퓨터는 사이버 범죄자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된 빗장 풀린 곳간이나 다름없다.
0과 1이라는 디지털 신호의 조합으로 바뀌어 컴퓨터에 저장되는 정보는 크게 개인정보, 기업정보, 국가정보로 나눌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예컨대 국가정보가 정보보호 소홀로 엉뚱한 세력에게 넘어갈 경우 안보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 인터넷 인프라는 세계최고 수준이다.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만큼 역기능도 가장 빠르고 널리 퍼진다.
누구든 어디에서 일하든 정보보호를 부지런히 실천해야만 인터넷 강국의 위상을 지키면서 깨끗한 인터넷을 편리하게 즐길 수 있다.
입력시간 : 2004-08-01 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