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증세 앞서 과세정상화인 소득세 과표조정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증세 가능성을 조심스레 시사하자 민주당이 소득세 과표조정안을 재차 들고 나왔다. 민주당 세제통인 이용섭 의원은 "우리나라 소득세 최고세율(38%)이 적용되는 과세표준(3억원 초과)은 1인당 국민소득의 11.7배로 주요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다"며 "이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기준으로 미국은 7.5배이고 영국과 일본은 각각 6.1배와 3.8배에 그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의 주장에는 고소득층의 세부담이 선진국에 비해 덜하다는 명분 아래 부자증세론을 부각시키려는 속내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득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의 80%를 부담하는 현실을 본다면 부자들이 딱히 세금을 덜 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 의원의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 여야 대치정국에 묻힐 뻔한 증세 문제를 국회 차원의 논의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다. 그런 측면에서 과표구간 조정은 증세토론의 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 세수확보 측면이나 과세체계 정상화 차원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과표구간 논란은 2년 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느닷없이 38%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면서 빚어졌다. 과표구간을 한 단계 늘린 것 자체부터 세계적 조류와 역행하는데다 최고 구간과 그 아래 구간(8,800만원, 세율)의 격차가 벌어져도 너무 벌어졌다. 과표가 8,900만원이든 2억2,900만원이든 똑같은 세율(35%)을 적용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최고세율 과표를 낮추는 대신 중간구간 과표를 상향 조정하면 중산층의 세부담을 줄일 여지도 있다.

기형적 소득세 체계를 언제까지 방치해둘 수 없는 노릇이다. 국회에는 여러 형태의 과표조정 법안이 계류돼 있다. 때마침 장외투쟁 중인 민주당이 정기국회에 등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이다.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누더기로 만드는 구태에서 벗어나 결자해지 차원에서 헝클어진 과세체계부터 바로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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