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설 모양이다. 의결권 행사지침을 개정해 주주총회에서 횡령·배임 같은 비위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CEO), 대주주 감시에 소홀한 임원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슈퍼갑 국민연금의 목소리 키우기에 총수가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일부 대기업은 물론 다른 상장사들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게 생겼다.
국민연금이 주주의 권리를 요구하겠다는데 원칙적으로 반대할 이유는 없다.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장사가 260개를 훌쩍 넘고 10% 이상인 곳도 34개나 되는데 주식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투자금을 마련해준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최대주주 또는 2대주주로서 불합리한 경영행태를 바꾸고 경영진의 전횡을 막으며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주주권 강화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지배구조가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주식시장이 불안할 땐 수익성과 상관없이 시장안정을 명분으로 자금이 투입되고 기업 길들이기 도구로도 쓰였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2011년에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국민연금의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경제민주화 도구로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원래 목적인 주식가치 향상은 간 데 없고 정권의 입맛만이 기금운용의 지상과제로 둔갑한 셈이다.
국민연금의 제1과제는 국민의 노후준비다. 어떤 목적도 이에 우선할 수는 없다. 주주권 강화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경영 감시로 기업과 보유주식 가치를 높이고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연금가입자들의 은퇴 후 노후생활 안정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확보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목표다. 정권의 입김을 없애지 않은 채 결정한 의결권 강화는 결국 기업에 대한 경영간섭만을 부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