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베이션 코리아 2014] 2부. 낡은 관료시스템, 국민의 위기다 <4> 임용·인사개혁이 첫 단추

고위공직 대부분 55세면 끝… 낙하산 없애려면 정년보장 필요
용퇴 않고 버티면 "자리만 욕심 낸다" 손가락질
전문성 무시한 순환보직·고시중심 채용도 문제



중앙부처의 A씨는 행정고시(5급) 합격 후 22년 만에 2급 이사관으로 승진했다. 승진의 기쁨도 잠시. 갈 곳이 없었다. A씨가 결국 선택한 것은 외부기관연수. 2년의 연수 기간이 끝날 즈음 그의 눈과 귀는 오로지 본부(부처)를 향해 있었다. 현재 실장급(1급)인 A씨는 "밖에 나가 있으면 초조하다. 교육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본부의 국장급 자리 이동이 어떻게 되는지, 들어갈 틈새는 있는지 등의 정보를 얻기 위해 수시로 본부의 선후배들과 만났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관료로서 첫번째(?) 위기를 마치자 이번에는 1급으로서 더 큰 위기가 닥쳤다. A씨는 "1급의 재임 기간은 길어야 2년이라는 게 정설이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면서 "자칫하다가는 '욕심만 많은 선배'라는 비아냥을 듣는다"고 하소연했다. 더욱이 대통령령인 '고위공무원단 인사규정'에는 고위공무원단으로 있으면서 1년간 보직을 받지 못하면 자리를 떠나야 한다고 돼 있다. 공직사회가 파벌과 낙하산 문화가 확산될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인사문화가 한몫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공직사회에 대한 '개조'의 목소리가 높다. 관료사회가 복지부동을 넘어서 파벌과 이기주의 등으로 점철돼 결국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무조건 공직사회를 '부정'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공직사회가 현재의 모습으로 추락한 근본원인을 정확히 진단한 뒤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들이 우선 꼽는 것이 인사문화와 채용제도의 변화다.

◇말뿐인 정년 60세…노하우 펼칠 기회 줘야=공무원의 정년은 60세다. 국가공무원법 74조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사실상 사문화돼 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5급 고시 출신이 60세 정년까지 간 경우를 한번 찾아보라"면서 "퇴로가 없다 보니 낙하산을 펼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안전행정부의 '2013 공무원 총조사'에 따르면 행정고시에 합격해 고위공무원단(1·2급)으로 승진하는 데 소요된 기간은 평균 21.2년. 20대 후반부터 공직생활을 시작할 경우 50대 전후에 이사관을 단다. 문제는 그 뒤다. 이사관급 국장은 길어야 4~5년이다. 1급 역시 1~2년에 불과하다. 장관이나 차관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5~6년 뒤에는 공직을 떠나야 한다. 대략 55세 이전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55세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도 운(?)이 좋은 사례"라면서 "상당수는 그 전에 짐을 싼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갈 곳은 적다. 30년 가까운 행정경험을 쌓아 소위 '전문가' 소리를 듣지만 현실은 다르다.

물론 2년 이상 1급으로 버티기도 힘들다. 공직사회의 문화가 그렇다. '용퇴'를 하지 않고 버티면 후배들에게 낙인이 찍히는 선배가 된다. '자기의 자리만 유지하려 한다'는 이유에서다. 떠밀리듯 자리를 떠난 뒤 품앗이처럼 산하기관이나 협회에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도 공직사회의 이런 구조 탓이다.

중앙부처의 한 관료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료들도 많은 반성과 책임을 느끼고 있다. 어디 가서 공무원이라는 말을 하기 힘들 지경"이라면서도 "개조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공무원들도 결국 생활인이다. 더욱이 고령화 사회 아닌가. 이런 점을 고려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영 한국행정학회장은 "우수한 관료가 너무 일찍 옷을 벗어 고용불안의 위협에 놓이지 않도록 임금피크제와 연동한 정년연장 등도 검토할 사안"이라고 내다봤다.

◇고시 일변도의 채용에도 변화를=고시 중심의 임용방식, 정책 전문성을 무시한 순환보직시스템 등의 변화도 병행해야 한다. 박경원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고시 중심으로 운영돼온 공무원 임용방식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고시제도하에서 합격자별 기수를 중심으로 관료들이 너무 폐쇄화되는 문제를 낳았다. 고시제도는 전문성보단 범용성, 종합적 소양보다는 단편적 성적 위주로 인재를 평가한다는 근본적인 한계도 안고 있다. 박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고시의 면접전형 과정에서 전문성과 공직윤리에 대한 심사비중을 강화하고 중기적으로는 고시제도를 공무원 채용시험이 아닌 자격시험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직자임용사정관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고 소외계층 등에 대한 특별전형시스템도 적용해볼 만하다"는 대안을 냈다.

공직자의 전문성 계발을 위해 보통 2~3년 단위로 관료의 보직을 계속 바꾸는 순환보직제도를 폐지하거나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기획재정부의 한 간부는 "순환보직제 아래에서는 공무원이 업무를 좀 알만하면 자리를 옮기게 되니 중장기적으로 일관되고 깊이 있는 정책을 개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고위관계자도 "국제회의나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 같은 후발국에서조차도 소관 업무에 수십년씩 일해 정통한 전문관료들이 포진해 있더라"고 전했다.

계급제 중심의 조직구조를 혁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해영 교수는 "직급(계급) 승진이 없이도 공무원이 자신이 맡은 업무상 능력과 성과에 따라 보다 더 많은 보수와 권한을 받을 수 있는 직위분류제 도입을 정부가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후배 밑에서 일하는 문화도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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