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버블세븐 아닌 노블세븐
조희제 hjcho@sed.co.kr
며칠 전 40대 중반의 저녁모임이 있었다. 다들 기업체나 국가기관의 간부급 인사들이었다. 이들의 면면이 우리나라 사회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중산층에 속하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가장들이다.
가정사 안부에서부터 건강 문제들이 몇 순배의 술잔과 함께 묻히고 나면 대개 차기 대권후보를 거론하게 되고 정치권 전체를 안주삼아 스트레스를 풀게 된다. 술이 거나하게 되면 아이들 교육 문제로 열을 받으면서 자리를 파하게 된다. 그런데 2~3달에 한번 정도 모이는 이들에게 새롭게 안줏거리가 추가됐다. 바로 부동산 문제다. 우리나라 가계자산의 80%가 부동산이고 보면 최근의 집값 동향과 부동산세금 문제가 남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버블세븐=상류층' 인식
부동산 문제가 나오자 세 부류로 나뉘어졌다. 소위 버블세븐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인지 그냥 웃으면서 너무 많은 세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고민 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버블세븐 이외에 집을 가진 사람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다. 너무 오른 집값에 대한 불만과 오르지 않는 자기 집에 부과된 세금폭탄에 대한 비난이 주류다. 여기에다 강남진입이 막힌 좌절감에서 오는 분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마지막 부류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무주택자들이다. 어떤 연유에서건 집이 없는 이들에게는 부동산문제와 관련된 어떤 대화도 거부하는 모습이었다. 분노를 술로 삭이는 것 같았다.
청와대와 정부가 나서 버블세븐을 거론했을 때 사람들은 그저 놀랄 뿐이었다. 설사 부동산 버블이 있다고 해도 버블 붕괴를 막고 연착륙을 유도해야 할 정부가 앞장서 부동산 버블을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의아함 때문이었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 일어날 악영향을 우려해 미리 국민들에게 알려 그 피해를 막겠다는 정부의 설명은 그 타깃이 강남 집값 잡기, 아니 강남 죽이기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설득력을 잃었다. 오히려 정부의 버블세븐 거론이 꺼꾸로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 모여 사는 노블세븐의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부가 보유세ㆍ양도세 중과에다 금리를 인상하고 부동산 담보대출에까지 손을 대자 최근 들어 이들 지역도 급매물도 나오면서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버블세븐 지역 사람들은 놀라거나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버블세븐 이외의 지역으로 집값 상승이 확산되고 있다. 가격이 오르지 않는 강북과 수도권 외곽지역은 가격담합으로 정부를 비웃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이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이다.
갑작스러운 국가파탄을 경험한 지난 98년 이후 우리 사회에는 중산층의 몰락이 진행 중이다. 근로자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급증, 사오정(45세 정년)ㆍ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놈)가 상징하는 중년층의 퇴출 등등. 우리 사회도 사회의 건강함을 유지해줄 중산층이 급격히 줄어들고 빈곤층이 늘어나는 계층분화를 겪고 있다. 문제는 새로운 계층분화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의 결실이 아니라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으로 보유하는 우리나라 가계상황을 생각하면 버블세븐 지역에의 거주는 곧 상류층으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패한 정책 고집하면 안돼
그러니 버블세븐에 사는 사람들은 웃음이 나오고 버블세븐 진입을 바라던 사람들은 날아간 기회를 아쉬워하며 목소리를 높여 불만을 토로한다. 무주택자들은 오르는 집값을 감당하기 힘들어 그저 한숨만 쉴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집값 급등은 당연히 잡아야 한다. 불로소득인 부동산 차익에 대한 세금부과도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강남 집값 잡기에 모두걸기(올인)하는 정부정책은 가격담합ㆍ풍선효과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실패했다. 실패한 정책을 고집하는 것은 부동산시장의 경착륙, 나아가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 이는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는 결과일 것이다.
부동산시장의 연착륙에 초점을 맞추려면 청와대가 지적한 부동산 4대적도 시장참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가격결정자로서의 이들의 역할을 받아들일 때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온다.
입력시간 : 2006/06/29 1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