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壬辰年)인 올해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20년째 된다. 우리에게 임진왜란은 왜구가 일으킨 난리지만 당시 동북아시아 전체로 보면 여러 나라가 한 시기에 한반도에서 대규모로 충돌한 국제 전쟁이었다. 이 전쟁으로 동북아 국제 질서는 재편됐다. 중국 대륙에서는 조선에 대한 무리한 군사 지원으로 국력이 쇠약해진 명나라가 50여년 뒤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섰다. 일본 열도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무너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새 정권이 수립됐다. 조선은 일본을 몰아내긴 했지만 최대 100만명이 목숨을 잃고 국토가 황폐해졌으며 왕조는 급격히 보수화됐다.
소장 일본학자인 김시덕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HK연구교수는 “역사적으로 일어났으리라 추정되는 사실(史實)을 규명하는 것은 역사학자의 몫이지만 문헌학자는 임진왜란 담론이 근세 일본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문헌에 입각해 소개하고자 했다”며 일본인이 보는 임진왜란을 정리했다.
저자는 전장이 되었던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기록뿐 아니라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한 국가들에서 만들어진 기록까지 살펴봐야 ‘임진년에 일어난 7년 국제 전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에도 시대 베스트셀러 ‘다이코기’를 비롯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보’, ‘조선정벌기’ 등 역사소설과 군담기 등 대중적인 문헌을 통해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어떻게 정당화했는지, 일본인들이 ‘보고 싶어했던’ 임진왜란의 이미지가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의식 내면까지 들여다본다.
일본인들에게 임진왜란은 13세기 원나라와 고려의 침공을 되갚는 정당한 전쟁이라는 합리화의식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보에 따르면 “히데요시가 말하기를 ‘예부터 중화는 우리나라를 여러 번 침략했으나 우리나라가 외국을 정벌한 것은 진구코고(神功皇后)가 서쪽 삼한을 정벌한 이래 천년 동안 없었다”고 씌어 있어 과거 한국ㆍ중국으로부터의 침략에 대한 피해의식과 저항의식이 깊숙이 존재한다는 것.
또 이순신 장군은 일본에서도 영웅이었다. 역사 소설 ‘에혼 다이코기’에서는 거북선으로 일본군을 격퇴하는 이순신의 한산도 해전기사가 실려있다. 하지만 근세 일본 작가들이 이같이 쓴 이유는 이순신 같은 영웅을 이긴 일본 장군은 더 위대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일본인의 시각에서 본 이 책은 다소 불편한 내용도 있고 경우에 따라 당혹감과 거부감을 줄지도 모르지만 ‘자신과 다른 생각을 들을 용기가 있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전한다.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