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분야 이색 직업… 고래 배설물 연구원

고래 대변 찾아 망망대해 헤매…유전적 특징, 생물 독소 측정 등 연구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과학자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물어볼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직업(?)이다. 그만큼 과학자라는 단어에는 남들보다 뛰어난 존재라는 느낌, 그리고 왠지 모를 존경심과 경외심이 담겨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과학자라고 해서 모두가 실험실에서 깨끗한 가운을 입고 현미경을 들어다 보는 것은 아니다. 전문 분야에 따라 막노동에 가까운 육체 작업을 해야 하기도 하고 하루 종일 깊은 산 속을 헤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파퓰러사이언스는 이처럼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과학 분야의 이색 직업을 선정, 발표했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래 배설물 연구원’. 보통 사람이라면 냄새만 맡고도 십리 밖으로 도망갈 고래의 대변을 찾아 망망대해를 헤매는 것이 이들의 주요 일과다. 이들이 배설물에 집착하는 것은 고래를 직접 잡지 않아도 이를 통해 고래의 유전적 특징을 비롯해 임신 테스트, 호르몬 및 생물 독소치 측정 등 놀라울 만큼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배설물만으로 어떤 종류, 어떤 개체의 배설물인지도 알 수 있다. 이 분야의 개척자로 불리는 미국 보스톤 소재 뉴잉글랜드 아쿠아리움의 수석연구자 로잘린드 롤랜드 박사는 고래 배설물 연구를 통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북대서양 참고래의 세계적 권위자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이들이 기름투성이 상태로 쾌쾌한 냄새를 풍기며 떠다니는 고래 대변을 ‘갈색 황금’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같은 고래 배설물 수집의 핵심은 바로 ‘스피드’. 고래 대변은 배설된 후 약 1시간 정도만 물위에 떠있어 이 시간을 놓치면 귀중한 연구 자료가 물속으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롤랜드 박사는 이처럼 촌각을 다투는 고래 대변 확보전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후각이 민감한 개들을 이용하고 있다. 그녀는 “마약 냄새에 반응하는 마약 탐지견처럼 고래 대변 냄새에 반응하도록 훈련시킨 배설물 탐지견들을 데리고 다닌다”며 “이들은 1.6km 밖의 고래 대변을 감지, 정확한 장소로 배를 인도해 준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배설물의 벌판에 도착하면 연구원들은 특수 제작한 그물로 최대한 많은 양을 배 위로 퍼 올린다. 이중 일부는 플라스틱 병에 담아 북미 전역의 과학자들에게 보내져 고래 생태연구를 돕기도 한다. 롤랜드 박사는 “1999년에만 해도 고래 배설물 연구자는 나 하나뿐이었지만 탁월한 연구 성과가 입증되면서 지금은 많은 과학자들이 갈색 황금을 찾아 항해를 떠나고 있다”며 “머리가 아플 만큼 코를 찌르는 악취를 제외하면 꽤 보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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