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역 패권주의 세계경제 회복 '발목'자유무역주의를 부르짖는 글로벌 경제 시대, 한쪽에서는 보호무역주의의 망령인 이른바 신보호주의가 고개를 쳐들며 국제경제질서가 혼돈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다자(多子)주의-지역주의. 언뜻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 상반된 경제 이데올로기가 기묘한 형태로 공존하고 있는 게 지금 세계경제계의 모습이다.
정보기술(IT) 산업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신경제의 거품제거 과정에서 야기된 미국 경기둔화 및 세계경제 침체.
여기에 맞물린 세계 각국간 무역 분쟁이 오는 11월 세계무역기구(WTO)의 뉴라운드 출범을 앞두고 새로운 형태의 국가 혹은 지역간 패권다툼의 양상으로 번지며 가뜩이나 수렁에 빠진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 점증하는 무역 분쟁, 경제 성장의 걸림돌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세계 각국간 무역 분쟁은 무엇보다 침체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경제와 그에 따른 자국이기주의가 그 출발선이다. 그러나 그 같은 점에서 촉발된 무역 분쟁이 세계경제 상황을 다시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손으로는 악수를 청하면서 다른 손에는 비수(匕首)를 들고 있는 건 비단 미국과 유럽연합(EU)뿐 만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 등 이른바 슈퍼 파워간 패권 다툼은 적어도 무역에 관한 한 사실상 전쟁의 상태에 이미 돌입한 것으로 봐도 지나칠 게 없다.
농수산물 수입문제부터 공산품의 반덤핑 제소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충돌해온 미ㆍEU간 무역 분쟁은 최근 제너럴 일렉트릭(GE)의 하니웰 인수를 둘러싼 EU측 반대로 양 체제의 감정이 극단적으로 표출됐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농산물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발동으로 중국의 반격을 받았고 우리나라와 EU간 선박 수출입을 둘러싼 무역 분쟁은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경기 부진을 겪고 있는 관련국들을 옥죄고 있다.
무역 분쟁의 원인 중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올들어 큰 흐름이 되고 있는 세계 각국의 보수화, 우경화 경향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은 이점에서 특히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출범당시 자유무역주의를 외쳐댔던 부시 행정부의 '팍스아메리카나'를 위한 집권 후 행적은 세계무역 분쟁의 불씨를 낳았고 여기에 국가 통치의 실패를 보수화를 앞세운 국가주의(Nationalism)로 돌파해보려는 일본과 일부 EU국들이 가세, 세계를 무역분쟁의 국면으로 내몰고 있다.
◆ 블록화, 지역패권주의인가
EUㆍ미주자유무역지대(FTAA) 등으로 대표되는 지역 블록화의 파고는 지구촌 곳곳에서 최근 들어 부쩍 높아지고 있다. 뉴라운드와는 별개로 진행되는 이런 흐름이 안개 속의 세계 경제에 보탬이 될지, 해가 되는지에 관한 견해는 다양하다.
그러나 이 같은 블록화의 물결이 현시점, 적어도 블록 역외권국들에게는 무역장벽을 높이며 경기 회복을 더디게 하고 있다는 데는 적지않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실제 WTO 통계는 무역과 투자의 흐름이 블록 내 역내국들간에는 급증하고 있지만 역외국사이에는 둔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배타성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현재의 지역주의에 근거한 자유무역지대 확산이 폐쇄적 지역주의가 아니라 개방적 지역주의며 전세계 시장 통합의 전단계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편 이 같은 상황 속 아시아의 경우는 더 어려워 보인다. 전세계적 블록화 경향에 유독 아시아만이 흐름에서 소외, 역외 및 역내 어느쪽으로부터도 실익을 챙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체결된 총 70억달러의 통화 스왑 정도가 가시적 성과라면 성과지만 실제 아시아권 경제 3대국인 우리나라ㆍ중국ㆍ일본간에는 자유무역에 관한 어떤 형태의 협정도 없이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3국간 소모적 무역분쟁만 늘고 있어 해당국은 물론 아시아 전체 경기에 주름을 지우고 있는 상황이다.
홍현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