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계의 구조조정 파장이 자동차부품업계로 확산되고 있다. 기존 모기업과의 협력관계가 하루아침에 끊어지는가 하면 완성차업체는 부품의 글로벌소싱 비중을 높이고 부품공용화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제는 경쟁력을 갖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다.여기에는 한국 자동차산업이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해 부품산업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부품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과 진행방향을 살펴보고 구조조정 회오리 속에서 굳건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성공기업들을 소개함으로써 부품산업의 앞날을 조망한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부품업계의 경쟁력 강화없이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재도약이 불가능하다. 싸고 품질좋은 부품조달을 위해 자국주의에서 벗어나 글로벌소싱을 본격화하겠다.』
강병호 대우자동차 사장=『외국 대형 자동차회사들과 경쟁해 살아남으려면 부품공용화를 꼭 달성해야 한다. 현재 부품공용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조만간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을 이끌고 있는 이들 양대 자동차총수의 발언은 국내 자동차부품산업에 휘몰아칠 거대한 빅뱅을 기정 사실화했다.
대우자동차의 쌍용자동차 인수부터 삼성자동차 빅딜까지 최근 2년간 벌어진 완성차업체간 구조조정은 부품업체들에게 구조개편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을 세계로 넓혀가고 있는 완성차업체들은 경쟁력있는 부품을 필요로 하고 있다. 지금의 부품산업 구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포드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업체간의 국제적인 빅딜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어떻게든 좋은 부품을 구입, 좋은 차를 생산해 경쟁력을 갖추어야한다는 것이 완성차업체들의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부품업체를 보호해오던 업체별 자동차 단일 생산체제가 붕괴되고 있다.
그동안 부품산업은 자동차 1,000만대 시대까지 오면서 국산화율을 높인다는 목적아래 우후죽순처럼 커왔던 것이 사실이다. 모기업과 인연을 만들어 납품권을 따내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앉아서 돈을 남기는 사업이었다.
국산화율이 90%까지 오르긴 했다. 하지만 「무늬만 국산화」한 것이었기에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국산화율이 내려가게 되는 아이러니를 만나게 됐다.
국내 부품산업을 들여다 보면 우선 그 수가 너무 많다는 데 놀라게 된다. 업체수가 많다는 것은 개별업체 살림이 영세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만큼 기술개발 여력과 원가경쟁력을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현대·기아·대우·아시아·쌍용·대우중·현대정공 등 7개 완성차업체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1차 부품업체 수는 2,035개. 완성차 하나당 평균 계열 부품업체수를 계산하면 290개나 된다. 중복계산된 것을 빼도 1,079개에 이른다.
연간 490만대(97년 기준)를 생산하는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1차 협력업체는 200개 내외다. 현대자동차(97년 128만대)만 놓고 봐도 생산대수는 도요타의 4분의1 수준이면서 부품업체는 1.5배(371개)나 돼 국내 부품업체들의 영세성을 실감케하고 있다. 조만간 기아·아시아·현대정공을 합병하면 현대의 협력업체는 800여개로 늘어난다.
자동차 부품은 규모의 경제효과가 그대로 드러나는 산업이다. 그런데도 국내 1,079개 부품업체 가운데 연간 납품액 규모가 500억원 이상되는 곳은 6.7%에 그치고 있다. 반대로 50억원도 안되는 영세업체가 62.3%를 차지하며 100억 미만까지 합하면 73.1%나 된다.
빅메이커로 꼽히는 만도기계·대우정밀·대우기전 등도 미국 델파이오토모티브(연매출 32조원)·일본 덴소(21조원) 등 세계적인 회사들에 비하면 아직 30~40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이충구(李忠九) 현대자동차 연구개발본부장(부사장)은 『국내 부품산업이 취약해 전반적인 기술개발과 품질향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완성차업체들이 분명한 부품산업 구조개편 원칙과 기준을 만들어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부품업체들도 경영권에 집착하지 말고 자발적인 인수·합병을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신호탄은 발사됐다. 지난해 10월 진영스탠다드(고무제품)가 부도난 덕강화학을 인수해 몸집을 불리고 올초 에스제이엠(SJM·벨로우즈 생산)이 풍정산업(미러)의 안산공장을 인수했다. 댐퍼 풀리 전문업체인 한국후꼬꾸와 한국심슨이 합병해 「한국후꼬꾸심슨」으로 다시 태어난 것을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야할 때다.【박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