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과학기술 등으로 산업 기반을 진흥하겠다며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리고 있지만 정부 출연 연구기관(출연연)의 인력 규모는 이에 턱없이 모자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규제로 정규직을 마음대로 확대할 수도 없어 고육지책으로 비정규직을 늘려왔지만 이마저도 최근 무조건적인 감축 압박을 받으면서 사면초가에 빠졌다.
2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 R&D 예산은 총 16조8,777억원으로 2010년의 13조7,014억원과 비교하면 3년 사이 3조1,763억원(23.18%)이나 늘었다. 그러나 늘어난 국가 R&D 예산만큼 많아지는 연구과제를 수행해야 할 출연연의 인력 증원 규모는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산업기술연구회와 기초기술연구회에 따르면 이곳에 소속된 14개 출연연과 11개 출연연의 정규직은 지난해 말 기준 각각 6,120명, 4,713명으로 2010년의 5,648명, 4,240명에 비해 고작 472명(8.36%), 473명(11.16%) 늘어나는 데 그쳤다.
◇고착화된 출연연 비정규직=출연연의 정규 인력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연구 인력에 대한 자율성은 극히 제한된 상태에서 정부의 R&D 투자 욕심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가중돼 날이 갈수록 출연연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연연이 만성적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것은 이들이 정부 예산을 지원 받는 곳인 만큼 실질적인 인력 수요와 별도로 논문 수 등 매년 평가를 통해 기재부로부터 정규직 한도 인원을 권고 받기 때문이다. 연구 과제 업무량에 따라 정규직 인력을 조절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셈이다. 게다가 1996년 도입한 연구과제중심제도(PBS)로 인건비의 절반 이상을 외부기관 프로젝트 수주로 충당하게 되면서 연구책임자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급한 대로 비정규직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에 소속된 11개, 14개 출연연의 비정규직 수는 2,231명, 3,393명으로 각각 전체의 32.1%, 35.7%에 달한다. 이마저도 지난해 5월부터 미래부가 각 출연연에 비정규직 감축 지침을 내리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서면서 억누른 결과다.
A출연연 기관장은 "정부 출연 연구소는 고급 인력이 필수인데 연구과제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에 상당 부분을 기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재부와 미래부는 여전히 현 비정규직 인원의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앞으로 출연연이 더 이상의 비정규직 채용을 자제하게 하는 방안만 논의하고 있다.
◇출연연, 정규직 자율성 더 확대해야=전문가들은 무조건적으로 비정규직 채용을 억제하기보다 이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관 평가 방법과 인력 할당 체계를 바꾸고 정규직 운용에 대한 기관 자율성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다. C출연연 관계자는 "최근 세수 부족으로 약간 주춤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는 매년 국가 R&D 예산이 늘어 왔는데 민간연구소나 대학에서 이를 충당하지 못하니 상당수를 출연연이 맡을 수밖에 없었다"며 "수행 과제는 느는데 인력은 모자라고 정규직을 더 뽑았다가는 감사를 받으니 우리로서는 도리가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현재 정부에서 비정규직 비율을 일정 선 밑으로 줄이라고만 하는데 앞으로 각 연구기관이 과제를 정상적으로 수행하기에 현 정규직 인원이 충분한지 여부가 계속 이슈가 될 것"이라며 "연구기관이 인력 문제로 정부 과제를 줄이게 되면 나머지 과제는 어떻게 소화할 생각인지 궁금하다"고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