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체험' 중학교 자유학기제 파행 우려

서울 2학기 시행 146곳으로 증가
안전 강화로 기준맞는 공간 부족
학부모 통해 일터 발굴에 의존
보완책 없이 내년 더 늘어 문제

학생 각자의 '꿈과 끼'를 살리기 위해 도입된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시행 초기부터 파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양한 자유학기제용 프로그램이나 훈련된 교원, 직업 체험 기업 등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자유학기제가 시작되면서 학교별 격차가 벌어지거나 유명무실화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운영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교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29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올해 자유학기제를 시행하는 중학교 150개 가운데 146개가 2학기에 '진로 탐색 집중학년제'를 자유학기제로 운영하면서 직업 체험 공간의 부족이나 프로그램 부실 등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선 학교들은 우선 급증한 학생 수에 비해 확보된 진로 체험 공간 자체가 크게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내 20개 구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직업체험지원센터와의 연계를 추진하고 있지만 안정적인 체험 기업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참여 기업에 대한 국가적 홍보가 없는 상황에서 특별한 인센티브 등이 주어지지 않아 지속적으로 진로 체험에 참여하는 대상 기업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기준이 강화되면서 학생의 외부 직업 체험을 실시할 공간 자체가 줄어들었다. 이렇다 보니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희망 진로를 조사한 뒤 우선 학부모를 대상으로 체험처와의 연계를 추진해 학부모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직업체험지원센터 관계자는 "(교육 기부에 대한 설득 외의 다른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센터가 모든 기업 발굴에 나설 수 없다"며 "50%를 체험센터가 담당한다면 현실적으로 50% 내외는 학교 재량"이라고 말했다. 일터가 발굴된다고 해도 해당 학교나 학부모 진로코치단, 진로담당 교사 등이 사전답사를 통해 안전관리를 점검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대다수 학교가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인력 부족도 호소하고 있다. 올해 자유학기제 대상인 150개 학교 중 100개 학교에는 진로지도를 담당하는 전문 커리어코치가 배정돼 있다. 하지만 진로진학 업무 등을 함께 담당하다 보니 자유학기제 직업 발굴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

개발된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이 아직 미비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자유학기제를 실시하게 되면 학교들은 주당 34시간의 수업시간 중 11시간 내외에 해당하는 평일 오후 시간을 진로·예체능·동아리·선택영역 등 관련 프로그램으로 구성해야 한다. 하지만 취지에 걸맞은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학습 여건 등이 아직 갖춰지지 않아 교사의 재량 등에 따라 학교별 편차가 발생하거나 유명무실하게 진행되는 사례 등이 등장하고 있다. 실제 수업과 큰 차이가 없는 영어 수업, 수학 수업 등이 진행되거나 주당 1시간 내외로 실시되는 진로 탐험 시간마저 교재로 학습하는 등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부 강사를 섭외할 경우 비용도 문제지만 강사를 검증할 기능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있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는 의견을 내놓는 교사도 나오고 있다. 한 학교 관계자는 "학부모들의 열의가 크고 직업군이 다양한 지역 내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 간 직업 체험의 차이도 심하다"며 "지방으로 간다면 이 같은 편차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별다른 보완책이 없는 가운데 내년부터 자유학기제에 참여하는 학교 수가 더욱 늘어난다는 점이다. 서울의 경우 내년에는 383개 중학교 중 70%에 해당하는 268개 학교가 자유학기제에 참여해 올해(39.2%)보다 참여율이 크게 증가한다. 오는 2016년에는 383개 전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가 실시된다. 하지만 현재 서울교육청은 학교당 3,000만원 내외인 연 예산의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른 시일 안에 개선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서울교육청은 '진로 탐색 집중학년제'로 운영돼온 서울 자유학기제를 예체능·동아리·선택영역 등 기타 3개 영역의 비중을 더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어 현장 직업 체험 교육은 더욱 유명무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시교육청은 세월호 참사 이후 연 1회인 현장 직업 체험 시간을 종전 6시간에서 4시간까지로 조정하고 청소년수련원 등에서의 약식 체험도 직업 체험으로 인정한 바 있다.

한 교육계 인사는 "(운영의 질이 담보되지 않다 보니) 자유학기제는 자유롭게 학원에 다니는 학기라는 말마저 학부모들 사이에서 나돌고 있다"며 "국가적 차원에서의 홍보를 통한 재정립이나 관련 프로그램 개발 등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파행 우려를 벗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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