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을 제조ㆍ사용하는 대기업 설비를 수리ㆍ청소하는 수급(하청)업체 직원들의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보호장구를 제대로 갖추지 않거나 너무 오래 작업을 하다, 혹은 안전수칙을 몰라 아까운 목숨을 잃는 근로자가 한둘이 아니다. 일을 맡은 업체의 부실한 안전교육도 문제지만 일을 맡긴 대기업 등 도급업체의 책임도 크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 업무를 외부에 맡긴 채 안전관리 책임에서 한발 물러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연이은 산재 사고를 줄이려면 도급업체의 안전관리ㆍ감독 책임 강화가 필수적이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의 불산누출 사고를 겪은 삼성그룹이 환경안전담당 경력ㆍ신입사원을 300명 뽑고 협력사에 일임하던 업무 중 일부를 가져오는 등 관련 조직ㆍ기능을 강화한 것도 이런 관점에서 긍정적 변화로 평가할 수 있다. 업계의 노력이 더 이어지기 바란다.
문제는 정치권이다. 고용노동부는 도급업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만들어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했지만 대선과 복지공약에 매달린 정치권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개정안은 도급업체가 화학물질 관련 수급업체 직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의무화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수급업체나 직원이 맡은 작업의 전후공정 등을 모른 채 일하다 사고를 당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또 수급업체와 작업자가 산업재해 예방에 필요한 명령 등을 위반한 경우 도급업체 사업주 등이 시정 조치하도록 했다. 현행 법은 '필요할 경우 위반행위의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만 돼 있어 안전사고가 나더라도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산업안전 사고가 터지는 마당에 정작 이를 제도적으로 개선할 법률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면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주요 상장사 가운데 하청업체를 선정할 때 안전보건 위험관리 능력을 평가하는 곳이 6%도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정치권은 얼마나 더 사람이 죽고 다쳐야 산업안전보건법 심의에 나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