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들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고, 편지와 가벼운 소포는 기송관(air shooter)을 통해 전달되고, 전기선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또 한편으로는 쇠로 만든 철로와 빠른 증기선이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고 있다. 이것은 산업과 기차가 협력해서 만들어낸 한 편의 동화와 같다!" 1865년 유럽의 한 신문에 산업혁명이 가져온 변화를 다룬 기사가 실렸다. 서양사회에서 템포(속도)가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지 400만여년이지만, 속도 개념은 18세기 말에 와서 비로소 자리잡기 시작했다. 증기기관ㆍ방적기ㆍ방직기가 이때 처음 발명됐고 전기신호를 이용한 통신과 엔진의 성능을 향상시킨 운송도구의 발달도 모두 이 시기에 일어났다.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사회사와 경제사를 가르치는 페터 바르샤이트 박사는 현대인들은 대부분 속도 바이러스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고 진단한다. 출근길에 지하철에 내리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계단을 향해 뛰어가거나, 고속도로에서 추월하는 앞차와 속도 경쟁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이 바이러스 감염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말이다. 농경시대를 살던 중세 이전까지 사람들은 시간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다. '저녁 해질 무렵'이라든가, '아침 동이 틀 때' 등으로 때를 말하곤 한 것이 좋은 사례다. 그러나 요즘은 하루 24시간을 분초로 쪼개 활용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시간에 쫓기며 산다. 속도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유럽이 그 동안 모르고 지났던 지구 반대편 신천지 즉, 인도와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면서 통치자들은 누가 빨리 신천지를 점령하는가에 따라 국운이 좌우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기에 동행했던 집단이 바로 상인이다. 자연의 순환에 따라 행동반경과 시간개념이 퍼져있었던 일반인들과 달리 상인들은 상품을 빨리 운송해 시간을 절약하며 판매할 때 얻는 재정적인 이익을 통치자 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다. 돈의 속성은 자연과는 반대로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을 몰랐다. 두 집단에 의해 세계는 속도 바이러스에 서서히 감염돼 경쟁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도로를 30분만 달려도 16세기에 살던 사람들이 2주동안에 걸쳐 구할 수 있는 정보를 순식간에 얻을 수 있으며,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데도 하루면 충분하다. 수개월이 걸렸던 16세기와 비교할 수 없는 혁명이다. 속도는 문화ㆍ스포츠도 바꿔놨다.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건장한 남자들이 힘을 겨루는 것이 인기 스포츠였으나 지금 대부분의 스포츠는 시간의 지배를 받고 있다. 선수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점수를 내기위해 혹은 수백분의 일초를 단축하기위해 고된 훈련도 마다하지 않는다. 속도가 야누스적인 면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저자는 속도 바이러스로 인한 가속화를 비난하기보다 속도의 명암과 기술환경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속도가 스포츠와 문화에는 어떤 영향을 발휘했는지를 객관적으로 접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