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잃은 제자들에 '희망' 전도

20여년전 열병 앓고 난 후 시력 잃어
전기치료 모니터에 점자 설치하고
안마 수업땐 직접 실습 대상 되기도


“서동복씨 오늘은 졸지마세요” “에이 선생님 꼭 보이는 것처럼 말씀하시네” 서울 맹학교의 오전 수업시간. 이인학(41)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면서 창가쪽에 있던 서씨에게 장난을 건네자 서씨가 역시 웃으며 대꾸한다. 순간 교실엔 웃음꽃이 퍼진다. 이 선생님의 교실엔 이제 갓 20살을 넘은 학생부터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까지 보인다. 이 이들은 모두 사는 도중에 시력을 잃은 사람들이다. 14년째 이곳 서울맹학교에서 안마 및 침술을 가르치는 이인학 선생님도 시각장애인이다. 초등학교 시절 원인 모를 열병을 겪고 15살 무렵부터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시골에서 자랐던 그는 방과후에 개구리를 잡던 추억, 까치 알을 빼먹던 생생한 기억을 모두 가슴에 묻어야 했다. 광주의 맹학교에서 점자로 세상을 배우던 그는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해준 것은 안마를 가르쳐주던 선생님. 이 선생님은 “안마를 하는 엄지손가락이 나의 생명줄이며 자부심이라고 느끼게 해준 분입니다. 그 선생님처럼 당당하게 살고 싶었어요”라고 은인을 추억했다. 이 선생님은 교직을 이수하고 자신처럼 시력을 잃은 사람들을 찾아 맹학교로 돌아왔다. 이 곳의 학생들에게 그는 ‘지나치게’ 열성적인 선생님으로 통한다. 그의 제자 현주연(36)씨는 “복잡한 전기치료 기계를 배울 때 선생님은 터치스크린 모니터 위에 일일이 점자를 달아서 가르쳐주셨어요. ‘내가 할 수 있으면 너희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선생님 앞에서 꾀를 피울 수가 있나요”라고 말했다. 최성규(26)씨도 “안마수업을 할 때 학생들에게 하나하나 시범을 보여주시고 몸소 모든 학생들의 실습대상이 되십니다. 그렇게 안마를 받으면 멍이라도 들 텐데요”라며 웃었다. 희미하게 시력이 남아있는 김은미(36)씨가 이 선생님에게 느끼는 감정도 남다르다. “저한테 약간의 시력을 남겨준 의사선생님하고 꼭 닮았어요. 그분이 저의 남은 시력을 찾아줬다면 이 선생님은 저에게 남은 희망을 보여주신 분이죠” 이 선생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희망”이라고 말한다. “지금 불행하다면 희망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일단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 그 때 새로운 길이 보일 것입니다.” 안마수업을 하러 다시 교실로 돌아서는 그의 엄지손가락이 유난히 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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