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인 신한국당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군사작전하듯 날치기로 노동관계법 안기부법 개정안 등 11개 법안을 7분만에 기습 통과시켰다.이것은 국회라고 할 수 없다. 정치라고 할 수도 없다. 문민시대의 개혁정당이 할 일은 더 더욱 아니다. 민주주의의 진전과 의회정치의 발전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실망했다.
여소야대였던 4·11총선 민의를 인위적으로 여대로 뒤집었던 신한국당은 또 한번 변칙을 저질렀다. 스스로 민주와 의회를 부정, 국회를 독선의 장으로 전락시켰다. 토론과 타협은 찾아볼 수 없고 군사독재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다수의 독단과 독주의 구태를 되풀이했다.
이래서 1996년 12월 26일은 15대국회 첫 오욕의 날로 기록, 기억될 것이다.
이번 날치기 처리의 책임은 여당에 있다. 다수의 여당으로서 당당하지 못했다. 몸싸움의 추태를 연출하지 않은 것만을 다행으로 여길지 모르나 토론을 거부하고 문민개혁을 후퇴시킨 힘의 횡포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야당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본회의 원천봉쇄라는 강경 전략이 토론 거부로 비쳐져 떳떳하지 못했을뿐 아니라 여당에 날치기 통과의 명분을 주었다. 그것이 곧 의회정치의 후퇴에 기여한 꼴이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안기부법 개정안의 통과는 문민정부 개혁이 원점으로 회귀한 것을 의미한다.
특히 관심을 끌었던 노동관계법 개정안도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게 됐다. 그만큼 노동계의 반발과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관계법 개정의 필요성은 인정되었고 공감대도 이뤘다. 경쟁력 강화와 경제회생 그리고 국제기구의 요청 등 대내외 여건이 노동법 개정을 촉진시켰던 것이다. 또 내년의 대선과 임단협의 변수를 감안, 연내 처리를 촉구해왔다.
그러나 변칙은 경계했다. 그런데도 끝내 토론 보완 합의의 과정없이 일방적으로 날치기 처리됨으로써 이 법을 적용받게 될 당사자들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게 됐다.
원안에서 복수노조를 3년간 더 유보하고 정리해고제 요건을 강화하는 등 부분 보완을 했다고는 하나 노사양측이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노동법같이 이해가 민감하게 상충되는 법안은 토론과 합의로 푸는 것이 정도이고 후유증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노사개혁의 출발도 참여와 협력적 노사관계에 두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절차로는 참여와 협력을 끌어내기 어렵다.
정국이 경색되고 노동계가 시끄러워질 조짐이다. 국민들은 편안할 날 없이 불안한 새해를 맞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