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 과정의 구조적인 비리를 이용해 뒷돈을 챙긴 TV 홈쇼핑 업체 직원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방송에 상품을 내보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납품ㆍ벤더업체들은 구매담당자(MD)는 물론 상품선정위원회와 편성회의에 참석하는 팀장과 본부장급 직원에게도 단계별로 로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TV 홈쇼핑을 둘러싼 대규모 납품 비리가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박근범 부장검사)는 홈쇼핑 납품업체들로부터 론칭과 황금시간대 배정 등의 청탁을 받고 리베이트를 챙긴 혐의(배임수재)로 N홈쇼핑 전 MD 전모(33)씨를 비롯해 4개 홈쇼핑 업체 관계자 7명을 적발해 2명을 구속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또한 검찰은 G홈쇼핑 MD 권모(38)씨, H홈쇼핑 MD 박모(37)씨 등 5명도 배임수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으며 범죄 수익 9억2,880만여원을 환수 조치했다. 아울러 이들에게 뒷돈을 건넨 납품ㆍ벤더업체 운영자 10명도 함께 재판을 받게 됐다.
이번 수사로 검은 거래가 포착된 TV 홈쇼핑 업체는 국내 6개 회사 가운데 4곳으로 시장 점유율 3위(2011년 기준) 안에 드는 업체와 대기업 계열사도 포함돼 있다.
검찰에 따르면 전씨는 2007년 9월부터 올해 7월까지 N홈쇼핑 건강가공팀 MD로 근무하며 건강식품 및 사은품 업체 등 8곳으로부터 론칭 관련 청탁을 받고 차명계좌로 4억7,000만여원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씨와 함께 구속된 N홈쇼핑 팀장 박모(39)씨도 같은 수법으로 1억1,170만여원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 나머지 홈쇼핑 업체 직원들은 적게는 1,400만여원에서 많게는 9,430만여원을 리베이트 명목으로 받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원인이 소규모 납품업체의 생살여탈권을 쥔 막강한 '갑'의 위치인 홈쇼핑 업체에 있다고 지적했다. 판매 수수료 산정법만 달라져도 방송 후 손익이 크게 차이 나는 탓이다. 또한 MD 권한을 축소하기 위해 상품선정위원회 등이 도입됐지만 이에 관계된 팀장이나 본부장도 로비 대상으로 포섭돼 내부 감시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상품 론칭과 추가 방송 편성, 선입고 물량 조절 등을 위해 벤더업체들은 실무 권한을 지닌 MD에게 로비를 하게 되는 구조"라며 "또 론칭 여부를 결정하는 상품선정위원회ㆍ편성회의에 참석하는 이들에게도 직급별 로비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