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분야에서 도감은 한마디로 출판문화의 꽃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정확한 사진과 그림을 기본으로 해야 하고, 과학적인 연구와 분석이 곁들여져야 하며 찾기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배려된 미적인 편집 감각은 물론, 생태 그대로 혹은 실물 그대로의 색감을 전달할 수 있는 제판이어야 한다.
도감은 식물 동물 곤충 등 생물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문화재라든가 민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제작기간도 오래 걸리고 소요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많이 팔리는 것도 아니어서 어느 출판사나 섣불리 달려들 수 없다는 점에서도 도감은 대접을 받아 마땅한 책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도감들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자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분야별 전문가들도 많이 늘어났고, 최근에는 우리 출판계에 다양한 도감들이 나오고 있어 다행이다. 예림당만 하더라도 10년 이상 도감 개발을 하다 보니 사진팀에서 필요 사진을 직접 확보하거나 좋은 사진 자료들을 수집해서 지금은 6만여 점의 자료를 보유하게 됐다.
내가 도감 출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출판 시작과 동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책을 만들든 참고할 자료가 있어야 했고 그 때마다 실물을 보기 위해 직접 찾아가거나 동식물에 대한 자료를 찾으려면 외국 도감을 참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마다 `우리도 언젠가는.` 하면서 도감을 생각하고 있다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김태정 교수를 만나게 됐다. 신문에 보도된, 20여년간 한국의 야생화를 따라 미친 사람처럼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일일이 사진으로 담아낸 그의 열정은 깊은 감명을 주었다.
나는 당장 편집장과 함께 그를 찾아갔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의기투합해 그가 보유한 야생화 사진 위주로 엮어진 `어린이 식물도감`을 펴내기로 합의했다. 김 교수가 제공한 사진과 글 외에 사진으로 다룰 수 없는 뿌리나 잎, 꽃의 각 부분, 씨앗 등은 세밀화를 전문으로 하는 그림작가에게 맡겨야 했다.
세밀화란 나뭇잎 하나를 그려도 모양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잎자루에서 잎줄기를 거쳐 잎 전체로 뻗어 있는 실핏줄 같은 미세한 줄기의 선까지 그려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1년 여의 작업 끝에 92년 7월 `어린이 식물도감`을 선보이게 되었다. 출판계에서 어린이를 위한 식물도감으로는 이 책이 처음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때 여러 출판인들은 `예림당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식물도감은 `야생화 도감` 성격이었기에 이후 일상생활과 교과에 연계된 본격 식물도감으로 `초등학교 식물도감`을 따로 내게 되었는데 이에 투자된 촬영비며 세밀화 비용만도 1억5,000만원이 넘게 들었다.
93년에는 `동물도감`을 냈고 94년에는 `곤충ㆍ물고기 도감`을 펴냈다. 도감을 내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사진자료를 구하는 일이었다. 사진을 그대로 쓰든, 그림으로 그려내든 도감을 만들려면 풍부하고 생생한 사진 자료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국내에서는 그와 같은 자료들을 제대로 구할 수가 없었다. 물고기 도감을 만들 당시 우리나라 바닷속 생태 사진 자료가 귀하여 수중사진 전문가에게 1컷에 30만원씩 빌려 쓴 기억이 난다.
그 뒤 계속해서 `우리문화재도감` `우리민속도감` `갯벌탐사도감` 등을 펴냈다. 이 중 갯벌탐사도감은 98년 저 말 많은 새만금공사가 한창 시작되던 시점에 `새만금을 살려야 한다`고 부르짖는 한 간절한 환경운동가와 연계해 이루어졌다. 필자와 회사 사진팀이 우리 나라 주요 갯벌들을 찾아가서 현지 갯벌 생태를 일일이 조사하면서 촬영하는 등 자료 수집에만 1년이 넘게 걸린 노력의 산물이다.
현재는 국내 곤충전문작가 이수영씨의 사진을 기초로 `곤충도감`을 진행하면서 이미 나온 도감의 보완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예림당이 존재하는 한 새로운 도감 개발은 계속될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출판협회장ㆍ예림 경기식물원이사장ㆍ전 >